(20) 북유럽 토착민 몰아내는 희토류 광산

2025-12-19

북극에서 145㎞ 떨어진 스웨덴 최북단 작은 도시 키루나. 면적은 2만㎢ 가까우니 꽤 큰 지역이다. 그러나 사실 도시라 하기에도 힘든, 인구 1만6000명의 마을이다. 원래는 원주민 사미족이 순록을 키우며 살아왔던 곳이지만 광업 도시로 더 유명하다. 1900년 스웨덴 정부가 이곳 철광산을 개발하면서 엘카브(LKAB)라는 국영 광업회사를 만들었다. 광산 노동자들이 살 수 있게 만든 마을이 키루나다. 엘카브는 유럽 철광석의 약 80%를 생산한다. 키루나는 유럽의 주요 철 산지이자, 스웨덴 산업의 버팀목인 셈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요즘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산이 점점 커졌고, 지반이 불안정해지자 정부와 엘카브 측은 2014년 키루나를 통째로 옮기기로 했다. 3㎞쯤 떨어진 새 마을에 도시 구조물을 하나씩 차례로 옮기고 있는데 이사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2035년쯤이 될 거라고 한다.

희토류 100만t 이상 매장 확인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지금의 키루나는 도시계획가 페르 올로프 할만이 공들여 만든 주거지였다. 볕 잘 드는 남향 경사면에 도시를 배치했고, 도로는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설계했다. 직선 도로로 바람이 쌩쌩 불지 않도록 북극 기후에 맞춰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 마을은 일조량이 적고, 지금 마을보다 겨울 기온이 10도는 낮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주민들은 새로 지어질 도시 광장을 ‘피투성이 바람 통로’라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광산을 더 키워야 하나 싶지만, 키루나의 이주는 요즘 글로벌 이슈인 희토류와 연결돼 있다.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 터빈 같은 신기술에 쓰이는 희토류가 이 지역에 대량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오랫동안 추가 자원을 탐사해온 엘카브는 2023년 1월 키루나와 가까운 페르 게이예르 매장지에 100만t 이상의 희토류가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키루나가 유럽 최대 희토류 지대로 부상한 것이다.

페르 게이예르뿐 아니라 인접한 옐리바레 등에서도 희토류와 관련해 ‘유망한 탐사 결과’가 보고됐다고 한다. 물론 실제 채굴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엘카브 측은 정부에 채굴 허가를 신청한 뒤 기존 광산보다 700m 낮은 곳에 수㎞ 갱도를 파고 탐사 중인데, 인허가 절차까지 감안하면 원자재를 시장에 공급하기까지 최소 10~1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식발표 때 회사 측은 “엘카브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스웨덴 국민, 나아가 유럽과 기후 모두에 좋은 소식이다. 광산 없이는 전기차도 없다”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경제성이 없어서 지금까지 희토류가 전혀 생산되지 않았다. 반면 수요가 늘고 있어서 ‘첨단기술 공급망 종속’ 걱정이 컸다. 특히 세계 희토류 채굴의 80%, 가공의 거의 100%를 차지하는 중국 의존이 이슈가 돼왔다. 그런데 키루나에서 희토류가 발견된 것이다.

현재 방침대로라면 유럽에서는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중단된다. 전기차 1대에는 네오디뮴, 프라세오디뮴 같은 희토류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6배 많이 들어간다. 키루나 일대 매장량이면 미래 수요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고 유럽연합(EU)은 기대하고 있다. EU는 ‘기술 독립’을 위해서 2023년부터 핵심원자재법을 만들어 인허가 절차를 줄이고 역내 개발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 올 3월 EU 집행위원회는 페르 게이예르 채굴을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하며, 인허가 절차를 27개월 이내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신속 절차)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통상 10년이 걸리던 인허가를 어떻게 2년 남짓으로 줄일지가 관건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환경 문제다. 페르 게이예르 광상(鑛床)은 희토류 함량이 기존 철 광산지보다 10배 높고 인 매장량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엘카브는 인, 희토류, 불소를 함께 추출하고 가공하는 순환형 산업단지를 인접한 지역에 만들려 하고 있다. 희토류를 캐낼 때 나오는 부산물을 땅에 파묻는 대신에 그것들까지 활용해 지속가능한 광업 사이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리맵(ReeMAP) 프로젝트라는 이 계획에 노르웨이 기업 리텍(REEtec)을 또 끌어들여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희토류 분리 기술’을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되면 키루나는 향후 유럽 ‘기술 독립’의 핵심 전선이 되는 것이다.

중국, 채굴·유통에 재활용까지 장악

키루나를 비롯해 희토류의 잠재적 개발지로는 늘 덴마크령 자치지역인 그린란드가 거론된다. 지난 6월 중국이 강철 합금, 반도체, 고온 용광로 부품 등에 쓰이는 몰리브데넘 수출을 규제하자, 그린란드는 곧바로 자기네 땅에 있는 몰리브데넘 매장지에 30년 채굴 허가를 내줬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도 각기 자국 북극 영토에서 흑연, 인광석, 희토류 매장지를 찾고 있다. 하지만 광석을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고순도 제품으로 정제하는 공정이 또 하나의 전장이다. 현재 유럽에는 광물 정제 설비가 모자라 유럽에서 캐낸 것조차 중국으로 보내 정제하는 실정이다.

희토류를 핵으로 하는 ‘공급망 전쟁’은 어디로 갈까.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면서 ‘팍스 실리카’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반도체 동맹, 칩4 동맹 등의 트럼프 버전인 셈이다. 미 국무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팍스 실리카는 인공지능·공급망 안보 관련 핵심 사업으로, 동맹국 및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간의 새로운 경제 안보 합의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공급망 연합이다. 지난 12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팍스 실리카 서밋’에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이 참여했다. 참가국들은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공동 프로젝트와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생태계’를 만들자는 ‘팍스 실리카 선언’을 채택했다. 기본 전제가 중국과의 경쟁이고 진영 줄 세우기인데 과연 ‘반도체 평화’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공급망 대결이 점점 가속화하고 있고, 한국이 그 핵심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2022년 2월 스웨덴과도 공급망 협력을 선언했고, 올 10월에는 서울에서 ‘지속가능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세계를 가르는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중국이 우위다. 미국에서 ‘팍스 실리카’ 회의가 열리자 중국 외교부 궈자쿤 대변인은 “모든 당사국은 시장경제와 공정 경쟁의 원칙을 준수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희토류 공급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 경쟁은 공염불이다. 일례로 키루나 광산에서 희토류가 생산되면 중국이 가격을 낮춰서 유럽 측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스웨덴 언론 노란(Norran)은 실제로 중국이 이런 식으로 미국 내 희토류 채굴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2월 12일 ‘희토류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할 수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팍스 실리카 동맹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동남아 순방 때에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 연달아 희토류 공급망 관련 합의를 했다. 11월 초에는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공급망 강화 공동 파트너십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까지 미국이 관심을 덜 가져온 자원 보유국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나라는 중국이다. ‘글로벌 사우스’, 즉 세계의 개도국 진영은 트럼프 정부보다 중국과 훨씬 친하다.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안간힘

트럼프 미국 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서반구, 즉 중남미를 자기네 텃밭으로 공식화하며 ‘역외 국가’는 손 떼라고 했다. 중국을 겨냥해 중남미 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미국이 차지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중남미 자원 채굴권은 중국이 상당수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구리, 코발트, 리튬 채굴 프로젝트 인수를 늘리고 있다. 이미 중국이 희토류 가공, 분리, 산업용 부품 제조까지 핵심 병목 지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지구적인 싸움 속에서 키루나 사람들은 이사를 해야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미족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지에 걸쳐 있는 대대로 순록과 함께 살아온 원주민들이다. 스웨덴 사미족은 2만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인구조사에서 민족 표기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다. 1960년대까지 스웨덴 정부는 이들의 전통적 생활양식을 없애려 애썼고, 지금도 사미 마을은 토착민 공동체가 아닌 ‘사메비(sameby)’라는 사업체 형태로 존재한다. 마을마다 관리하는 순록의 마릿수와 이동 지역도 국가가 정한다.

키루나 주변에 가브나(Gabna)라는 사미족 마을이 있다. 페르 게이예르 광산이 개발되면 이 마을 사람들은 순록 이동길이 끊긴다. 이미 오래전부터 광산이 커지면서 수천년 이어져온 순록의 이동 경로가 바뀌어왔고, 목축민들이 옮겨 다니는 거리는 훨씬 길어졌다. 거기 더해 북극권은 지구평균보다 4배 빠르게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 희토류 채굴이 시작되면 이 지역 사미족의 순록 목축은 사실상 끝장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쓰고 버린 전자제품에는 금과 은을 비롯한 광물이 많이 들어 있다. 리튬이나 코발트나 희토류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폐기물에서 이런 성분을 회수하는 자원 리사이클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량판매 1세대에 해당하는 전기차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 몇 년 안에 ‘폐배터리 쓰나미’가 올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거기서 광물을 회수하는 ‘도시 광업’이란 말도 퍼지고 있다. 스웨덴 일각에선 유럽의 희토류 수요와 재활용으로 충당 가능한 분량 등을 충분히 조사하고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사미 영토에서 신규 채굴을 미루는 모라토리엄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광업 또한 중국이 기술적으로 앞서나가는 영역이다. 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녹색 경제로 전환한다며 자연환경과 함께 살아온 토착민들을 몰아내는 것이 스웨덴과 유럽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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