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김영철을 만났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는 20년째 매일 영어회화 공부 중입니다. 최근엔 일본어 시험도 도전 중이죠. 캐나다 몬트리올·호주 멜버른 코미디페스티벌에도 참가했습니다. 2025년 초엔 발라드 곡이 담긴 개인 앨범도 냈고요. 매달 1권의 책을 읽는 독서모임에도 열심입니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밤 10시에 5년 다이어리를 쓰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는 그. 왜 이렇게 성실히 자기계발을 하는 걸까요? '공부하는 삶'은 김영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물었습니다.

PART 1. 김영철은 불다 만 풍선?
Q.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얼마 전 JLPT(일본어능력시험) 3급 떨어져서 좌절했어요.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요. 공부도 자기 철학과 주관대로 해야지, 남 말 들어선 안 된다는 걸(웃음). 5급 딴 후에 4급 준비하려고 했는데요. 다들 바로 3급 해보라는 거예요. 귀가 얇아서 홀랑 넘어갔죠. 차라리 작년-올해 걸쳐 차근차근 준비했으면 됐을 텐데. 지난주에 너무 충격 받아서 혼자 울고 그랬어요. 바쁜 와중에 나름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Q. 일하고 직접 관련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타격이 있나요?
저에게 공부란 일이에요. 제가 매일 아침 라디오(SBS 〈김영철의 파워FM〉)를 하잖아요. 언어 곳간을 부지런히 채워놔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말실수를 하고, 콘텐츠가 빈곤해져요.
오늘 나온 신문 헤드라인 뉴스도 모르면 안 되잖아요. 지금 관세가 어떻고, 한미회담이 어떻고. 이게 어떤 식으로든 청취자의 삶에 영향을 주거든요. 그게 저한테 사연으로 도착하고요. 뭘 알아야 공감을 하든 해결책을 주든 하죠.
그리고 어휘력이 곧 방송력이에요. 영어 문장 만들 때 동의어를 가급적 피하라고 하거든요?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제가 "노래 듣고 올게요.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중에 〈히어로〉 노래 듣고 올게요." 이렇게 무심결에 말했더니 PD가 뭐라 하더라고요. 지금 노래라는 단어만 3번 반복했다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라는 곡 듣고 올게요"라고 고쳐주는 거예요. 훨씬 자연스럽고 듣기 편하잖아요. 나를 위해서도, 내 말을 듣는 타인을 위해서도 어휘 공부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Q. 영어는 이미 충분히 잘하잖아요. 굳이 다른 외국어까지 도전한 이유는요.
우연히 이런 댓글을 봤어요. 더 불 수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 안 불고 있는 듯한 풍선이라고. 그냥 저 풍선에 만족하고 있고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고.
마치 제 모습을 읽힌 것 같았어요. 제가 보기보다 겁이 많거든요. 그런데 다르게 살고는 싶어요.
어쩌면 여기서 더 크게 풍선 부는 법을 잘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아는 형님〉 관두고 나와서 새로운 도전하는 게 더 큰 풍선을 불 수 있는 건가?
어쨌든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좀 다르게 살아야 할 거 같더라고요. 내 루틴을 바꾸면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공부였던 거죠.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주일에 2번 일본어 학원 가요. 매일 저녁에 일본어 원어민 선생님과 화상 수업하고. 하루도 안 빼먹어요. 가방 속에 단어장 가지고 다니면서 외웁니다. 지금 인터뷰 하러 오면서도 갖고 왔어요.

Q. 외국어는 언제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 동력이 좀 떨어질 수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올해로 영어 공부한 지 20년 됐어요. 1974년생 중에, 외국에 어학연수 안 나가본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잘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까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일 하게 되던데요(웃음).
제가 오프라 윈프리를 좋아하는데요. 오프라가 그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바로 당신이 꿈꿔왔던 삶을 사는 것"이라고요. 저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라디오 DJ가 되고 싶었어요. 꿈꿔왔던 삶을 사실 이룬 거죠. 이제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면 돼요. 그런데 그게 안 될 수도 있어요. 혹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 꿈을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안 되더라도 일단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는 남잖아요.
PART2. 강박은 꼭 나쁜 걸까?
Q. 코미디언으로 사는 건, 매 순간 평가를 받는 일인데요. 인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저는 인정 강박, 칭찬 강박이 있어요.
유튜브 〈닥터프렌즈〉 진행자인 오진승 선생이 권해서 ADHD 검사를 받은 적 있어요. 저는 높은 확률로 ADHD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를 보니 강박 성향이 있다는 거예요. 웃겨야 되는 강박, 잘해야 하는 강박, 칭찬받고 싶은 강박.
제가 〈아는 형님〉을 10년째 하고 있잖아요. 거기서 맨날 듣는 말이 '노잼이다'거든요. 얼마나 자존감이 떨어지겠어요. 어느 날엔 제 표정이 어두우니까 강호동 형이 그래요. "널 자를 순 없어. 그럼 우리가 여태껏 노잼이라고 놀린 게 진짜가 되잖아(웃음)." 원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어서 이수근씨를 이기는 게 꿈이었는데요. 요즘은 그냥 꼴등이라는 마음으로 촬영해요. 꼴등 타이틀이라도 가져가는 게 낫죠.

Q. 영철님을 보면 강박이 꼭 그렇게 나쁜 건가 싶기도 해요.
오, 맞아요. 제가 예전에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에 꽂혀서 러닝을 시작한 적 있어요. 매일 10km를 뛰자고 제 자신한테 약속했거든요. 그것도 일종의 강박이지만, 그 약속이 저를 뛰게 만든 거예요. 주 6일을 뛰었어요. 비 오면 우산 들고 뛰고. 그러다 무릎연골 파열이 와서 지금은 예전처럼 뛰진 못하는데요. 여전히 러닝에서 오는 성취감, 도파민 이런 게 좀 그리워요. 그걸 한번 느껴봤기 때문에.
Q.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라는 질문을 들으면 뭐라고 답하세요?
저는 '열심히'라는 단어를 들으면 항상 유재석씨가 생각나요. 개그콘서트 할 때였는데, 신인이었던 저를 차로 집에 데려다주면서 그러더라고요. "영철아, 너 더 열심히 해야 돼." 제가 그랬어요. "형, 나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 그랬더니 유재석씨가 그러더라고요.
"영철아, 이 업계에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여긴 다 열심히 하는 데야. 열심히 했는데 운이 좀 더 좋은 애, 열심히 했는데 타이밍이 잘 맞은 애… 열심히 안 했는데 잘된 사람 아니?" 딱히 못 대겠는 거예요. 성공한 사람 중에 열심히 안 한 사람 없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 열심히는 해놔야 될 것 같더라고요.

Q. 친구 만날 때도 질문거리를 열심히 준비하신다고(웃음).
계기가 있어요. 제가 영어학원 다닐 때 수업 끝나고 뒤풀이를 간 적 있어요. 모르는 친구들 2~3명이 앉아 있는데 제가 이 친구들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대화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겉도는 대화만 하다 끝났어요. 다음부터 질문지를 생각해갔어요. "한국에 온 지 몇 년 됐어? 혼자 살아? 어디에 살아? 오전 수업만 들어?"
막상 쓰다 보니까 질문이 4, 50가지 되는 거예요. 이거구나. 사람들한테 호감을 사는 건 만나기 위한 준비에서 시작되는구나. 그 다음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약속에도 기본적인 질문거리는 마련해가요.
편한 자리에선 보통 깊게 생각 안 하고 말하잖아요. 그러면 말실수 많이 해요. 상대방 근황에 대해 잘 모르니까 질문한답시고 던지는 말실수도 있고. "아기 소식 아직 없어? 왜 안 낳아? 왜 결혼 안 해?" 다짜고짜 이런 무례한 질문부터 던지게 돼요. 제가 말을 엄청 많이 하는데, 그런 사람치곤 말실수 별로 없어요(웃음). 준비를 많이 해서 그래요. 그것도 열심히라면 열심인데, 일종의 기분 좋은 강박이죠.
Q. 강박에 대한 관점이 바뀐 계기가 있다면요.
전 심한 '걱정쟁이'였거든요. 군대 시절엔 '사격 못 하면 어떡하지?' 개그콘서트 할 때도 '못 웃기면 어떡하지?' 조바심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최화정씨랑 고깃집에 갔어요. 고기가 좀 타서 제가 "저 고기 탄 거 어떡해?" 하니까 최화정씨가 "남기면 되지!" 하는 거예요. 나랑은 완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더라고요. 못하면 그냥 못하는 건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하며 살았는지… 그 시간에 누군가 한번 더 웃길 수 있었을 텐데요.
PART 3. 조금 다르게 살고 싶지 않아요?
Q. 커리어의 터닝포인트가 언제인가요?
2016년 〈김영철의 파워FM〉 진행을 맡게 됐을 때부터요. 라디오 진행이 평생의 꿈이었거든요.
제 고향이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리예요. 버스가 2시간에 1대 있는 곳이었어요. 바닷소리,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고요. 놀거리라곤 KBS랑 MBC 보기, 그리고 라디오 듣기뿐이었어요. 사연도 많이 보내고 소개돼보기도 하고.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라디오 DJ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오프닝 멘트 할 때 문자가 5~600통이 와요. 라디오는 저만 에너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청취자분들과 서로 기운을 주고받는 일 같아요. 9년째 하고 있지만 더 잘하고 싶어요.
〈아는 형님〉 시청자가 라디오를 듣고 놀랐대요. 너무 잘해서. 반대로 〈김영철의 파워 FM〉을 듣던 청취자가 〈아는 형님〉을 보고 놀랐대요. 너무 못해서(웃음). 한때는 라디오만큼 방송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요즘 생각해보면 둘 다를 잘하긴 힘든 거 같아요. 그냥 매일의 루틴을 지키면서 길을 걸어갈 뿐이죠.
Q. 매일 아침 7시에 생방송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 같아요.
누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자신 있어, 웃기는 게 자신 있어?" 물으면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자신 있다고 말해요. 웃기는 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거지만, 일찍 기상하는 건 제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잖아요. 라디오를 매일매일 100%의 타율로 잘하는 건 쉽지 않지만, 성실하게 준비를 할 순 있어요.
라디오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하는 거라, 주중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요. 6시에 집에서 출발하며 가는 길에 20분간 전화영어 매일 하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신문 읽고, 책 보고…
완벽하지 않은 두뇌, 어린 시절의 결핍, 커리어를 만들며 겪어온 부침들이 자꾸 저를 나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주저하지 않고 자꾸 앞으로 나아가게요.
Q. 어떤 결핍인가요?
(후략)
▶ 슬픔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기까지, 김영철이 '기록'을 통해 다시 일어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하는 나를 위한 인사이트 '폴인'에서 인터뷰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어 주세요.
https://www.folin.co/article/122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