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생활 속 탄소 배출을 줄이고 정책 변화를 지지하는 시민 행동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인이 실제로 생활 습관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팀이 진행한 흥미로운 실험은 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8주간의 현장 실험을 통해 도덕적 호소(moral appeals) 가 개인의 탄소 발자국 감축과 시민적 기후 행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참가자 156명을 모집해, ‘클라이밋 챔프(Climate Champ)’라는 전용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매일의 생활 행동을 기록하도록 했다. 앱은 난방, 식단, 소비, 교통, 전기 사용, 항공 이동 등 6개 영역에서 탄소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환산치로 계산했으며, 동시에 정치적·시민적 기후 행동(예: 기후 정보 검색, 정치인 접촉, 캠페인 참여 등)도 추적했다. 8주간 수집된 데이터는 총 7,600여 건에 달했다.
참가자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앱을 열 때마다 “기후 행동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래를 남겨주는 일”과 같은 도덕적 호소 문구를 접했고, 다른 한쪽은 별도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 이 문구들은 ‘돌봄’과 ‘공정성’이라는 도덕적 기반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사전 조사에서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분석 결과, 도덕적 호소를 받은 그룹은 난방·식품·소비 부문에서 탄소 배출을 줄였으며, 정치인에게 연락하거나 기후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시민 행동이 유의미하게 늘었다. 특히 정치적 성향이 중도나 보수인 참가자에게서도 기후 행동 참여 증가가 나타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메시지가 특정 이념을 넘어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가자들의 일상 코멘트도 이를 뒷받침했다. “난방을 켜려다 대신 스웨터를 입었다”, “고기를 줄이니 탄소 발자국이 크게 줄어 놀랐다”는 식의 기록이 이어졌다. 일부는 중고품 구매나 녹색 전력 공급자 전환 같은 장기적 행동 변화로도 확산됐다.
그러나 모든 결과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역효과(backlash)’가 관찰됐다. 특히 이기적 가치관(egoistic values) 을 가진 참가자들은 도덕적 메시지를 받았을 때 자동차 사용이나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도덕적 호소가 불편하거나 자기 이미지와 충돌할 경우 방어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교통과 전력 사용 부문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미 높은 전기 요금 때문에 절약 노력이 이뤄지고 있어 추가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교통 부문에서는 대중교통 인프라 부족 등 구조적 제약이 커 개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생활 속 변화를 유도하는 데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이번 연구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금전적 인센티브’보다 도덕적 책임감이 기후 행동의 강력한 촉진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도덕적 기반,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감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며 “이러한 메시지가 개인 행동과 시민 참여를 동시에 강화해 기후 정책에 대한 지지를 넓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npj Climate Action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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