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함정 노후화 심각...기술·숙련 인력 부족 등 기반 무너져
MRO, 기간 짧고 수요 충분...함정 건조로 이어지는 '선순환'
한화오션, 국내 최초 수주 美 군수지원함 MRO 성공적 완수
HD현대중공업, 美 최대 방산조선사 'HII'와 MOU 체결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주역인 1500억 달러(한화 약 208조원) 규모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의 주요 투자처로 미국 함정 유지·보수·수리(MRO: 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예상보다 미국 함정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력 저하, 숙련공 부족 등 기반조차 무너져 있어 미국의 절박함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신규 조선소 건설보다 회전이 빠르고 수익성도 좋은 MRO 수주 및 기술 협력, 인력 양성 등에 조선 펀드 등을 활용하는 방향이 좋은 협상 포인트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미 관세협상 타결 후인 지난 3일(현지시간)미국 내 MRO 인프라 문제와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보도했다.
WSJ은 공공 조선소의 노후화, 숙련 인력 감소, 기술력 저하 등이 미국 해군 함정 정비가 지연되고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USS Helena 잠수함은 6년 이상의 정비 기간을 거치다가 전기 사고 및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고, 결국 퇴역했다. 정비가 지연되면서 군 전력 유지에 큰 차질이 빚어진 사례다.
WSJ은 정비 지연의 원인으로 숙련된 용접공 및 기술 인력 부족, 공사 계약상의 임금 구조, 수주 전략 후 인력 유출, 장비 노후화 등을 꼽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정비 기간을 늘리고 비용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 안보 경쟁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가 필요한 미국과 비대칭 관세협상 결과 속에서 최대한의 국익을 이끌어 내야 하는 한국의 필요가 잘 맞물릴 수 있는 영역으로 MRO가 꼽히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신규 선박 건설 못지않게 수리 조선의 중요성과 비중이 크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미 관세협상 브리핑에서 "합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선박 건조, MRO 등을 포괄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신규 조선소 건설은 미국 측에서는 수요가 크겠지만 우리 조선업계에는 크게 매력적이진 않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소 건설은 투자액은 많고 장기간이 소요되지만 직접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는 아니다"라며 "지금 거론되는 MRO는 주로 함정 MRO인데 수익이 적지 않은 영역이고 일단 일감이 충분한 상황이고 여기에 더해 회전 주기가 빠르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전했다.
보통 선박 건조에는 수년이 소요되지만 수리 조선은 1년 안팎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감이 충분하다면 지속적인 수주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미 함정 MRO 수주는 궁극적으로 미 군함 건조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업계에 형성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대표 조선사들은 미국 군함 MRO에 대한 준비가 된 상태다.
한화오션은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수주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USNS Wally Schirra)'호에 대한 MRO를 마치고 출항시켰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약 6개월간 진행된 월리 쉬라의 MRO 작업은 선체 및 기관 유지보수, 주요 장비 점검 및 교체,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전반적인 정비 작업이 포함됐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7월 미 해군 함정 정비 협약(MSRA)을 체결한 이후, 한 달 뒤 첫 번째 프로젝트로 월리 쉬라 창정비를 수주하며 본격적으로 미 해군 MRO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11월에는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호의 정기 수리 사업도 연이어 수주하며, 미국 내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 4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업체 헌팅턴 잉걸스(Huntington Ingalls Industries)와 전투함·지원함 협력, 선박 생산 효율화, 기술 자동화 및 인공지능(AI) 적용, 공급망 협력 및 인력 교육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아울러 같은 달에는 미국 AI 방산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와 무인수상정 개발 및 시장진출을 위한 MOU도 체결한 바 있다.
미 해군 역시 관세협상 타결 전부터 일찌감치 한국 조선사들을 전략적 파트너로 염두에 두고 있다.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은 지난 4월 말 직접 한국을 찾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업장 현장을 둘러봤다.
펠란 장관은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를 먼저 방문해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부에서 건조 중인 이지스 구축함을 살폈다. 또한 정기 점검 중인 정조대왕함에도 올랐다.
이후 거제로 이동한 펠란 장관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둘러봤다. 펠란 장관은 특수선 야드를 방문해 정비 중인 미 해군 급유함 '유콘'을 시찰하고 건조 중인 잠수함 '장보고-Ⅲ 배치(Batch)-Ⅱ'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