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풍요로운 가을 농가

2024-10-18

농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가을 농가에 일 년 내내 삐거덕거리며 무거운 짐을 감당해온 소달구지의 바퀴가 손질을 기다리며 비스듬히 누웠고, 논과 밭에서 굳은 땅을 힘차게 갈아엎던 황소와 따가운 햇볕 아래 곡식을 말리던 멍석도 긴 휴식에 들어갔다. 마당에서는 모녀가 마주 앉아 멍석에서 바싹 말린 콩을 체로 흔들어 옥석을 가리는 작업 중이고 그 곁에서 닭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땅에 떨어진 곡식 알갱이를 찾고 있다. 농가의 가을마당에는 먹을 게 흔하다. 탈곡하거나 도리깨질할 때, 또는 곡식을 체로 고를 때 마당 여기저기로 흩어진 곡식 알갱이들은 닭의 차지다.

마당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볏짚은 콩을 턴 콩깍지, 콩대와 함께 겨우내 소 먹일 여물을 쑤는 데 쓰일 것이다. 사실 농가에서는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마루 위에 있는 가마니와 포대 자루도 배가 불룩하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부엌의 열린 문 사이로는 땔감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보인다. 지붕을 새로 올린 듯이 말쑥한 이 초가집은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옥이었다. 방 두 칸과 부엌과 헛간이 일자 형태인데 그 당시 농촌에서는 어느 집이나 크기가 대개 고만고만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평균 대여섯 명인 식구들이 어떻게 그런 작은 집에서 살았을까 싶어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가깝게 부대끼고 복닥거리며 지내서 살붙이다운 살뜰한 정이 붙었는지 모른다.

밤에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서로 베개와 이불을 끌어당기거나 동생의 배에 다리를 턱 하니 올려놓고 짓궂게 키득거렸다. 그러다 유난히 잠이 쏟아지는 날엔 슬그머니 혼자 툇마루에 나와 잠들었다가 잠결에 마당까지 굴러떨어진 흑역사도 있다. 당시 시골에선 대문이 없거나 있어도 시늉뿐, 마당과 길의 구분이 모호했다. 어쩌면 그 시절엔 내 것과 네 것을 넘어서 열려 있으므로 지금 도시에서 사는 우리보다 더 여유 있게 공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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