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강등 위기, 올해 우승 눈앞…‘전북 대반전’ 포옛 리더십

2025-09-12

[정영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프로축구 전북의 진격

프로축구 K리그1의 전북 현대는 현대자동차가 100% 출자해 운영하는 축구팀이다. 이 팀은 K리그 사상 최다 우승(9회), 최다 연속 우승(5회, 2017~21년), 코리아컵 5회 우승 등 빛나는 기록을 갖고 있다. 최강희 감독 재임(2005~18) 시절 구축한 ‘닥공(닥치고 공격)’은 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전북은 지난해 처참한 시즌을 보냈다. 12개 팀 중 10위에 그쳐 K리그2 3위 서울 E랜드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만약 졌다면 K리그1 최다 우승팀이 2부로 강등되는 흑역사를 썼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강등은 면했지만 전북은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십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감독이 거스 포옛(57·우루과이)이었다.

전북은 2025시즌 K리그1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팀 당 28경기씩을 치러 10경기씩만 남겨둔 12일 현재 전북은 승점 63(19승6무3패)으로 2위 김천 상무(승점 46)에 17점이나 앞서 있다. 10번째 리그 우승이 거의 굳어진 가운데 프로·아마추어를 망라해 최고 팀을 가리는 코리아컵 결승에도 올라가 있다.

짧은 시간에 팀을 확 바꿔 놓은 포옛 리더십의 요체를 찾기 위해 전북 현대 구성원들과 축구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단 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이나 공동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조직 관리’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조직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한다

전북은 사실 몇 년 전부터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예전의 ‘극강 모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포옛 이전의 감독들은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팀 전력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전북이면 무조건 우승해야지’ ‘전북은 닥공이지’ 라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축구 전문 유튜브 ‘달수네라이브’를 운영하는 축구해설가 박문성씨는 포옛의 ‘판단’이 전북 대반전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포옛은 ‘과거의 전북’이 아닌 ‘현재의 전북’을 냉철하게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가 보기에 전북은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도, 그렇다고 수비가 견고하지도 않은 팀이었다. 일단 수비를 탄탄하게 하고 빠른 역습으로 득점을 노리는 전술을 팀에 입혔고, 그에 맞는 멤버를 꾸렸다. 몇 경기 시행착오를 겪은 뒤 전북은 쉽게 실점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 골을 넣는 팀으로 바뀌어 갔다.”

포옛은 포백 수비의 중앙에 경험 많은 홍정호(35)-김영빈(33)을 투입해 안정적인 디펜스 라인을 구축했다. 상대가 공격할 때는 수비형 미드필더 박진섭이 두 중앙수비수 사이로 내려와 파이브백을 형성해 수비진을 두텁게 했다. 볼을 뺏은 뒤에는 상대 진영 공간으로 길게 공을 연결해 공격수와 상대 수비수가 경합하도록 했다. 여기서 찬스가 생기기도 하고, 경합 과정에서 나오는 세컨드 볼을 쇄도하는 선수가 잡아채 다시 공격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전술로 가장 크게 덕을 본 선수가 돌파력과 슈팅력이 좋은 전진우(26)다. 2018년부터 7시즌 동안 13골을 넣었던 그는 올해만 14골로 K리그1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포옛 감독이 ‘아들’이라고 부르는 전진우는 올해 꿈에 그리던 대표팀에 승선해 A매치에서 골맛을 보기도 했다.

지난 시즌 최다 실점 1위였던 전북은 올해 최소 실점 1위,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공-수 밸런스를 갖춘 팀으로 변모한 것이다.

프로는 스스로 결과를 책임진다

전북의 공격수 이승우(27)는 국내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다. 세계적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포옛 감독님은 쓸 데 없는 스트레스를 안 주고,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점이 특히 좋다”고 했다.

이 부분은 축구 팬들도 잘 모르는 영역이지만 의외로 경기력과 선수 수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승우는 “한국 감독들은 ‘몇 시에 자라’ ‘뭐 하지 마라’ ‘아침 다 같이 먹어라’ ‘산책 가자’ 등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너무 많다”고 했다.

과거 비수도권 프로팀 감독이었던 A씨는 야간 홈경기가 끝난 다음날 새벽에 조기축구 한 게임 뛰고 해장국을 먹는 게 ‘루틴’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코칭스태프는 ‘무조건 참석’이었다. 코치가 이 정도라면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실제로 감독과 사생활 문제로 충돌하는 바람에 출전에 불이익을 받거나 팀을 옮기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승우는 “포옛 감독님은 훈련과 경기 외 시간에 선수들이 무엇을 하든 믿고 맡기신다. 오전 8시에 훈련 시작해 10시 조금 넘어 끝나면 기혼 선수들은 가족이랑, 싱글들은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낸다”고 팀 분위기를 소개하며 “지금의 프로 선수들은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왔고, 본인 스스로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믿음을 주면 그에 보답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감독님이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다”고 부연 설명했다.

전북의 정조국 코치는 포옛 리더십의 키워드로 ‘신뢰’를 꼽았다. 정 코치는 “지시가 심플하고 명확하다는 게 감독님의 강점이다. 명확한 지시가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팀이 더 강해지는 선순환을 불러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이승우는 현재 팀에서 주전이 아니다. 주로 후반 조커로 투입된다. 그럼에도 불만이 없다. “우리는 교체, 주전 따로 나눌 것 없이 다들 너무나 잘한다. 어딜 가나 뛸 수 있는 선수들이다”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끌어낸다

남미 출신 특유의 열정적인 리액션도 선수들의 도파민을 이끌어내는 측면이 크다고 한다. 유럽 명문 팀에서 주전으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해 주는 조언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선수들은 입을 모은다.

박문성 해설가는 “포옛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한번 해봐’ 이런 얘기를 자주 하는데 그게 잘 먹혀든다”면서 공격수 티아고의 예를 들었다. 티아고는 지난 시즌까지 골도 많이 못 넣고 출전 기회도 못 잡아 울기도 하고 팀을 떠나려고 했다. 티아고의 각종 기록과 스타일을 체크한 포옛 감독이 그를 불렀다. “네가 팀에서 힘들어 하고 기회도 없어서 떠난다면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여기 남는다면 내가 너를 바꿔보고 싶다. 너의 미래를 나한테 맡기면 나는 네 잠재력을 터뜨릴 수 있다.”

이 말에 티아고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티아고는 올 시즌 7골-3도움을 올리며 부활했다. 조직의 리더는 ‘이 사람이 말한 대로 했더니 되네’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 얘기다. 포옛이 이끄는 ‘전북 현대호’가 어디까지 순항할지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다.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애칭)’이 다시 들끓고 있다.

우루과이 대표팀, 첼시·토트넘 주전 활약…이영표·기성용과 인연

◆거스 포옛=1m88㎝ 장신인 포옛은 현역 시절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26경기를 뛰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145경기·49골)와 토트넘(98경기·23골)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토트넘의 수석코치를 맡았을 때는 이영표를, 선덜랜드 감독 때는 기성용·지동원을 지도했다. 그리스 대표팀(2022~24)을 맡아 선전했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티켓은 따내지 못했다. 지난해 7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후보 최종 3인에 올랐으나 대한축구협회 실무 책임자가 “포옛의 전술 스타일이 한국 대표팀과는 맞지 않는다”며 홍명보를 옹립했다. 농구 선수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농구를 좋아해 ‘미스매치 활용’ 같은 농구 전술을 축구에 응용하기도 한다. 아들 디에고 포옛은 잉글랜드 청소년대표 출신이며, 전북의 분석코치를 맡아 아버지를 돕고 있다.

정영재 칼럼니스트. 중앙일보·중앙SUNDAY 스포츠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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