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대부로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사사(士師)를 지낸 전획(展獲柳下惠)은 현자(賢者)로 칭송을 받았다. 맹자는 그를 이윤(伊尹, 상나라의 명재상) 백이(伯夷, 상나라의 충신)?공자와 함께 4대 성인(聖人)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그런데 그의 동생 도척(盜跖)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백성을 유린하며 약탈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그 수단과 방법이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런 악마와 같은 도척이 집에 개를 키웠는데, 짐승인 개는 도척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기 때문에 꼬리를 흔들며 따랐다. 나아가 도척이 시키는 대로 누구를 막론하고 무작정 짖고 물어뜯었다. 여기에서 그저 먹다 남은 밥 한 덩이를 던져주는 자에게 굴종하며, 비열하고 악랄한 사람을 빗대어 ‘도척지견:盜跖之犬:도척의 개’라는 한자 성어가 생겨났다.
사람이 짐승과 분명히 다른 점은 인륜(人倫)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선포한 「무장포고문」은 이점을 분명히 한다. 포고문의 시작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더불어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사유(四維)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하였다. 사유는 예(禮 절도를 넘지 않음), 의(義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음), 염(廉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 치(恥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를 가리킨다.
한편 조선시대 학동이 가장 먼저 배우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은 사서(史書)였다. 첫머리에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오륜(五倫)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오륜은 인간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인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애,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 남편과 아내 사이의 구별,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차례, 친구 사이의 신의 등이다.
언제부터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는 인륜과 오륜보다 거짓과 비상식과 궤변이 똬리를 틀고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걸었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대법관들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12.3내란’ 우두머리를 파면해야 한다는, 그것도 국정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위론적인 현실마저 외면한 채 ‘법 기술자들’ 못지않은 ‘법관 놀이’에 여념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헌재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지난해 12월 3일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본 내란의 실체가 분명하고, 그 이후 드러난 내란 실행계획은 천인공노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더욱이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연일 계속되는 갈등과 분열은 파국을 치닫고 있다. 헌재의 머뭇거림과 우유부단은 비상식적인 판결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어느 시대나 국론분열은 망국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헌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사법부의 최루 보루이다. 헌재가 무너지면 국가의 법치가 무너지는 것이며, 이는 파국을 뜻한다. 특정 세력이 헌재의 위상과 권위를 무시하고 파괴하며 ‘도척의 개’처럼 날뛰어도, 국민 다수는 물론 세계의 이목은 대한민국 헌재가 명석하고 현명한 법 논리로 헌법을 수호하는 판결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12.3내란’과 관련하여 아무리 거짓과 비상식과 궤변이 횡행해도 헌재는 이를 바로잡아야 하고, 국민 다수가 이를 기대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대길 <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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