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환율은 달러당 1500원 턱밑까지 치솟았고 증시는 하반기 내내 추락했다.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로 1%대 저성장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미국발 정책 리스크 등 대내외 불확실성까지 겹친 결과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내수 부양도 시급하지만 국정 공백에 대응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
지난달 18일 서울 영등포구 NH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난 김병연 투자전략부 이사는 “1분기엔 대내외 우려들로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정책 모멘텀이 없지만, (대통령 탄핵이 확정될 경우) 적어도 바뀐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추가경정예산안도 논의할 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2003년 NH투자증권(옛 LG·우리투자증권)에 입사해 21년간 경제 분석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아래는 일문일답.
-지난해를 진단하고 올해를 전망해 본다면?
“작년은 아쉽다. 상반기의 좋은 수출증가율과 실적에 비해 비싸지 않은 밸류(가치)로 코스피가 3000선을 넘어갈 수 있었지만, 하반기(경기)가 꺾일 것이란 생각에 상반기에 주가가 많이 오르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는데도 증시 부진과 환율 상승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외국인의 시각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정치적 불안으로 한국 투자에 얼마나 비중을 둬야 할지 불안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빠른 정치적 회복 탄력성과 시장 안정화 조치를 보여준 만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한국의 재정·내수부양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재평가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정치적 안정을 찾는다고 해도 당장 저성장이 해결되고 수출이 좋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 우호적인 정책이 하방경직성을 견고히 해주면서 2분기부터는 (증시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쯤이면 트럼프 리스크와 미국 시중금리 상승 우려도 많이 반영했을 것이다. 본격적인 (국내 증시의) 상승 시점은 1분기 말에서 2분기 초가 될 것이다.”
-국정 공백 속에서 트럼프 2기의 무역정책에 대응하게 됐다.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보나?
“적어도 1분기엔 대내외 우려들로 경기가 둔화될 것이다. 재정이 공백인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빨리 돌아갈 순 있다. 한국은행이 빠르게 금리를 안정시켜 유동성을 풀어주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투자·내수·수출·정부지출이 없는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자본시장 안정화 노력이 더 많이 투입될 것이고, 이는 (경기의) 바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탄핵이 확정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내수부양책을 펴면 좀 나아질까?
“과거에도 정권을 가리지 않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러 정책이 있었다. 수출이 막힌 것을 알기 때문에 (탄핵 확정 후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은 되돌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정책들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국내 산업구조가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큰데
“1990년대와 비교하면 월드와이드웹(www)이 나올 때 한국은 메모리칩을 만들고 대만이 메인보드를 만들었다. 미국은 인터넷의 시발점이 됐고, 개인용 PC가 나올 때 한국은 핵심 부품을 담당했다. 지금은 그때만큼 핵심(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온디바이스AI 등 인공지능(AI)이 서버보다는 우리의 하드웨어로 들어와야 한다. 거기에서 하나의 역할은 할 수 있다. 한국은 IT하드웨어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개된다면 한국이 소외되진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통화정책 탈동조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환율과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예전에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벌어지면 자금이 밖으로 빠져나가 환율이 약세를 보인다고 했지만, 2000년대 중반 당시 (한·미간) 금리 차가 컸는데도 한국에서 자금이 빠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채권시장이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이탈은 심각하게 봐야하는데, 오히려 계엄 사태에도 외국인은 순매수를 했다.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뿐, 단기적으로 위기상황이 발생하진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넘긴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달러 강세는 더 진행될 것 같다. 다만 트럼프는 달러 약세를 원해, 달러 강세를 유발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는 상충된다. (트럼프 정부의) 타깃은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일 것이다. 달러 강세가 진행된다면 중국과 일본에 구두로 (환율을 절상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텐데 중국과 일본 입장에서도 위안화·엔화 강세는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위안화·엔화와 동조화되기 때문에 원화가 홀로 약세로 가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환율은 1400원 초반대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증시가 ‘과열론’에 직면한 만큼 조정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그렇다. 그래서 1분기를 (국내 증시의) 조정세로 봤다. 그러나 한국은 잘하면 하반기부터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정책이 들어오겠다는 기대감 때문에 하방이 받쳐질 수 있다. 금리인하가 멈추면 시중금리는 오른다. 가격이 비싼데 할인율의 압박이 들어오면 차익 실현 욕구가 높아져 (미국 증시의) 조정요인이 된다. 미국 증시엔 1분기 건전한 조정 장세가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주가가 올라갈) 상단은 막히겠지만, 횡보 정도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1기 당시 관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자 세계 증시가 하방 압력을 받았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이념주의자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세정책에 대한 우려로 증시가 하락할 수 있지만 실제 행동은 (강도가) 세지 않아 우려로 지나갈 것이다. (미국에서) 감세와 규제 완화가 이슈가 되고 이에 따라 재정적자와 세입 부족 우려가 나올 때 관세 카드를 더욱 세게 꺼낼 것이다. 올해 미국의 성장률은 괜찮겠지만, 관세 카드를 세게 쓸 경우 내년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