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시작한 수년 전, 뛰는 사람 중 다수는 수십년 경력을 자랑하는 40~60대 ‘마라톤 클럽’ 회원들이었다. 칠순을 넘긴 러너를 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대회 신청은 어렵지 않았고, 장년 러너들의 권유로 현장에서 등록해 뛰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마라톤 대회 풍경이 달라졌다. ‘스타일로서의 러닝’이 유행하면서 메이저 대회 풀코스 신청은 ‘광클’이 필요한 일이 됐다. ‘국민건강 체육’이던 마라톤은 이제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고 레슨을 받으면서 ‘정복할’ 대상이 됐다.
주요 대회 주로에는 청년들이 가득하다. 42.195㎞를 천천히 각자의 페이스로 뛰면서 즐기던 ‘노익장’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발견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신청 방법이 선착순이거나 굿즈 패키지 구매 방식이기 때문이다. 1200만 관중 시대를 맞은 야구장에서도 올드팬들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미국 정책학자 데버라 스톤은 <정책의 역설>에서 “공정함이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의 경계를 정하는 서사”라고 전한다. 케이크 한 판을 다섯 명이 나눠 먹기 위해 5등분이 공정할 수도 있고, 각자 사정이나 필요를 고려하는 것이 더 공정할 수도 있다. 성적순이나 선착순도 일리가 있다. 한국 사회는 케이크의 비유로 보자면 성적순이나 선착순으로 먼저 가져가거나 혹은 정확히 5등분하자는 입장이 맞붙는 사회다. 다른 방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서울 아파트 게임이 전형이다. 정부는 10·15 대책으로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적용을 통해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한다. 중앙 언론의 끊임없는 중계 보도, 커뮤니티 게시판, SNS의 포스팅은 전국의 안정적 주거를 바라는 모두가 서울 아파트 가격이라는 점수판을 바라보게 만든다. 서울 아파트를 ‘영끌’하는 일은 ‘광클’하는 것처럼 불가피한 일이 되어버렸다.
2024년 기준 서울의 아파트 비중은 59.8%, 주거 형태 중 임대주택 비율은 11.2%인데, 정책 언어 속에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은 언제나 예외이거나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다. 고시원과 다세대, 원룸, 공공주택의 풍경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주류 담론에서 서울과 아파트를 벗어난 삶을 상상하는 이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되고, 서울의 아파트 보유자들은 전 재산인 아파트 가격을 지키기 위해 임대아파트 옆에 펜스를 세운다. 제대로 된 공공 임대주택 단지 개발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주거 정책이 서울 아파트 게임에만 반응한 결과이자 “서울 아파트를 소유해야 1등 시민이 된다”는 사회적 신호의 결과다. 규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무주택자를 움직여 더 높은 가격을 떠받친다. 청년들의 열패감은 더 커진다.
역설적으로 다주택자를 줄이겠다는 정책은 전월세 매물을 줄였고, 갭투자를 막고 실입주만 허용한 토지거래허가제는 전세를 줄이고 월세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라는 제도를 정책이 위축시키는 셈이다. 월세를 전세보증금의 할인된 현금 흐름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금융전문가의 언어다. 부지런히 전세대출을 갚으면 매달 나가는 돈이 없어지게 되고 나중에 보증금이 종잣돈이 된다는 생활인의 감각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전세 갱신청구권을 3년씩 세 번으로 늘려 주거 안정을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세 자체를 소멸시키는 금융 방향을 추진하는 모순도 벌어진다. 적정하게 과세해 그 재원을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균형발전의 기금으로 활용하는 편이 나을 텐데, 정치인들은 투기꾼 찾기에 급급하다.
마라톤 대회의 성공은 기록뿐 아니라 완주자 수도 중요하다. 주요 국제 마라톤은 선착순 대신 추첨을 하고 연령, 성별, 기록, 장애 여부 등을 고려해 참가자를 배분한다. 낙오자를 없애기 위해 도로 통제를 늦은 시간까지 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참가자 모두가 ‘걷뛰’로라도 들어올 수 있다. 최근 발생했던 여러 인명 사고도 줄일 수 있다.
주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서울 아파트 매매’를 제외한 선택지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주거 형태가 보호받고 주류화되며, 서울 외의 선택지를 주는 것 말고는 근본적 해법은 없다. 10·15 대책에서 수도권 아파트 거래에 충격을 줘서라도 시간을 벌겠다는 정책의 다급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주거의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분명한 주거 정책 없이 ‘머니무브’만 강조하면 결국 열망과 좌절의 사이클, 갖가지 사회적 갈등은 멈추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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