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도 견디게 해준 책의 온기…‘다독다독’ 여전히 든든한 기댈 곳

2025-04-21

책을 안 읽는 사람들도

책벌레가 될 수 있을까

죽음의 공포 속 ‘진중문고’에 열광한 2차 세계대전 참전 미군들

소설·역사 등 다양한 분야 선별된 책에서 위로받고 ‘새 희망’ 발견

고된 현실 벗어나 미지의 세계 만나는 ‘독서’ 내면 확장 계기가 돼

갈수록 ‘고효율 맞춤 정보’에만 익숙해져가는 현대인들

무엇을 읽고 있는지 점검하고 ‘좋은 글’ 더 자주 만날 기회 가져야

4월은 ‘책의달’입니다. 도서관 등에서 다양한 독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독서와 관련해서는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독서를 안 한다고는 하지만, 실은 굉장히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자체는 꽤 된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해 국제도서전에 15만명이 몰려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문제는, 기존에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정도겠죠.

과연 기존에 책을 전혀 안 읽던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가능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럴 필요가 있긴 한 걸까요? 오늘날엔 영상, AI 등을 통해 간편하게 지식을 쌓고 활용할 수 있으니까 책은 영영 필요가 없어지는 걸까요? 책을 읽을 때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간 책 읽기에 대해 대체로 ‘독서가’의 시점에서 살펴보았다면, 오늘 레터에서는 책을 안 읽었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해찰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중문고’의 전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전쟁터로 간 책들>을 쓴 몰리 굽틸 매닝은 말합니다. “오히려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심지어 책을 안 읽던 사람들마저도 책에 맹렬하게 빠져들게 되었다”고요.

<전쟁터로 간 책들>은 2차 세계대전 무렵(1943~1947년) 미군 부대에 제작·배급되었던 ‘진중문고’에 대한 흥미로운 책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그만 책을 나눠주기로 했는데요. 소설,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1300여종의 책을 1억2000만부나 찍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진중문고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였냐면 밥을 먹을 때도, 자기 전에도, 참호 속에서도 책을 붙잡고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고요. 부대 풍경을 살펴본 이들은 이렇게 전하기도 했죠. “군인들은 그 책을 어서 빨리 읽고 싶어서 밤늦게까지 읽다가 그만 책 위에 쓰러져 잠이 들기도 했다네.”

이쯤 되면, ‘원래 옛날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이 원래 책을 읽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군인들 대부분은 학교를 졸업한 뒤 책을 아예 안 읽은 사람들이었고요. 게다가 1940년대는 책이 아니면 볼거리가 전혀 없는 시대도 아니었고, 기술 발전으로 인해 얼마든지 군부대에서도 라디오, 오락용 잡지, 영화, 만화 등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터에서 매일같이 책에 빠져서 밥 먹을 때도 책을 볼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180도 변신이라 할 만하죠.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책에 이끌리게 했을까요? 책의 어떤 점이 그들을 바꾸어놓았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해보았는데요.

첫째,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쟁터의 독서’는 사실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당장 몇분 후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동료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과연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긴장’을 풀어주는 가벼운 즐길 거리와 오락들이 낫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넘기다가 저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오락거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봤다기보다는, 라디오나 잡지, 신문, 축구 등 다른 오락거리들이 많이 있는 상황 속에서도 굳이 진중문고를 선호했고 모두가 자진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부분 라디오나 방송 등은 적군의 프로파간다나 아군의 선전으로 가득한 상황이었는데요. 전파력이 좋은 만큼 이를 악용하려는 이들도 많았고, 군인들에게는 적군의 프로파간다만큼이나 아군의 ‘영웅화’ 역시 상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들에게 전장은 결코 ‘고상한 그리스 신전에서의 전투’ 같은 것이 아니라 당장 부상자가 생기고, 동료가 죽어나가는 긴장이 가득한 현장이었기 때문이죠.

강제로 현실의 한복판에서 참상을 직접 겪어야 하는 처지가 되자, 그들은 거짓된 슈퍼맨의 환상, 기만과 혐오, 조장된 공포, 진실을 가리는 프로파간다로 가득한 라디오와 가벼운 읽을거리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매닝은 “참전 군인에게 죽음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언론)은 그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며 “신문과 잡지는 훈련병 생활을 낭만적으로 미화했지만, 많은 병사들이 아주 비참해했”다고 말합니다. 라디오를 켜면 적군의 선전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뿐이었죠. 이들은 차라리 라디오를 끄고 “조용히 있기로” 했습니다.

대신 비록 직접적으로 전장과 연관된 내용이 아닐지라도, 믿을 만하고 진실된 방법으로 세계를 그려내고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책, 그냥 푹 빠져들 수 있는 책, 그렇게 고통을 견뎌내고 미래의 희망을 기약할 수 있는 책들을 몹시 읽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책들에 빠져드는 시간만큼은, 이들은 전장을 잊을 수 있게 되었고 세상과 연결된 기분이 들게 해주었죠.

이어 책 안 읽던 군인들이 책을 읽게 된 두 번째 요인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손에 든 것이 ‘아무 책’이 아니라 바로 진중문고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부대에 보내기 위해 도서를 민간에서 기부받았지만, 적합하지 않은 책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고 골라달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죠.

좋은 책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곧 포기했을까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열의가 있는 사서 등으로 꾸려진 전시도서협의회는 아예 세계 각지의 미군 부대에 직접 보낼, 병사들에게 맞춤한 진중문고 시리즈를 그냥 직접 만들어서 배포하자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버립니다. 베테랑 사서, 전문가들이 직접 도서들을 엄선했고요. 협의회는 책의 물성부터 군인들이 언제 어디서든 펼쳐볼 수 있도록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협의회는 그 목록의 책들을 결코 ‘기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골랐죠. 협의회는 병사들의 희생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고뇌와 헌신을 현실적으로 다룬 책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했습니다.

물론 진지한 책들만 있는 건 아니었고요. 협의회는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되 ‘진실되게’ 쓰여 있어서 지적 호기심, 유머, 위안을 고루 얻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했습니다. 이야기책부터 스포츠, 연극, 철학, 고전, 역사, 서부물까지 아주 다양했죠. 군인들은 “고상하고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고려하여 선정한 이 책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입니다!”라고 외쳤고요. 심지어 호주의 한 군인은 잠깐 미군 부대와 협동 작전을 펼칠 때 야구선수 루 게릭에 대한 진중문고를 읽고는, 협의회에 직접 편지를 해서 “부디 그 책을 보내주세요”라고 간청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좋은 책은 취약함, 복잡함을 드러낸다

이런 내용을 읽다 보면 정말로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한편 과연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과연 오늘날에도 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독서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진중문고 사례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비록 전시는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 공포감, 좌절감 등으로 얼룩져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커뮤니티, SNS 등에는 ‘육각형 인간’, 노인 등 약자 혐오, 학벌 등 줄 세우기, 고립에의 불안, 일터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 노동자들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누칼협’의 서사만이 있고,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나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대부분 연예인의 자기 홍보,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 등밖에 없죠.

그리고 적어도 과거의 군인들은 기만적인 프로파간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라디오를 간단히 끌 수 있었고, 끈다는 선택지가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지만 - 오늘날 우리는 그 선택지마저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각기 고민 속에서,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좌절하며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말단 병사들 역시 다양한 불안감과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말을 모두가 듣는 곳에서 대놓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의 고통과 공포, 고립감 등을 홀로 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이 ‘총알받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이곳에서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본국에 돌아가면 찬밥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죠.

실제로 한 영국군은 이런 고민에 빠져 시무룩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함께 있던 미군들은 막스 슐만의 <회피자들>을 그에게 내밀었죠.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큰 환영을 받으며 귀환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암시장에서 산 휘발유를 넣은 차를 타고 귀환하고 숨겨둔 식량으로 만든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여자친구는 그가 군대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는 이유로 “진짜 영웅” 대접을 해주지도 않았죠. “이 책은 모든 일이 잘못되어가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나갔다. 영국 군인은 이 책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낄낄거렸다.”

이때 누구도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걱정거리들을 책 속 인물은 솔직하게 꺼내어 말함으로써, 그것도 유머를 곁들여 말함으로써 나만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군인들은 막강한 영웅의 이야기보다도 취약함을 드러내는 작가들의 이야기, 실수담, 고뇌 등에서 눈물을 흘릴 만큼 위로를 받았고, 불우한 이주민 출신 여자아이의 성장 소설,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낸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서 깜짝 놀라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하는 것 같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흥미롭게도 이런 위안을 주는 책들은 반드시 위안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쓰이거나 추천된 것이 아니며, 굉장히 엉뚱한 부분에서도 독자들은 위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좋은 책은 제대로 ‘내용을’ 읽지 않아도 단지 그것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바꾸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에서 프랑스 작가·독서치료사 레진 드탕벨은 7개월 동안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어떤 책을 읽은 중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학생은 내용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적어도 그 복잡함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고민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드탕벨은 책의 내용을 설령 잘 알지 못하더라도, 독자들에게 “돌연 자유롭다는 느낌과 자신이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게 된다고 하죠.

그리고 저자가 이 책에서 수차례 강조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건 ‘좋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책은 그것을 만나면 반드시 직선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삶을 바꾸고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죠. 저자는 “저급한 책”을 통해서는 활기를 찾을 수 없으며, 좋은 책은 우리를 둘러싼, 편협하고 “나쁜 이야기들의 기만에서 깨어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좋은 책은 조건 없이 환대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이다, 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할 수는 없겠지만, 위의 한 가지 조건 외에도 다른 한 가지 조건을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바로 좋은 책이 우리를 조건 없이 환대하고, 독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엔 흔히 상대방에게 꼭 유용한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만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고 양이 많으면 밀어내곤 하죠.

하지만 저는, 어쩌면 좋은 책은 그 모든 ‘효율적인 맞춤정보’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굳이 우리의 수준에 맞추지 않고, 유용한 정보만을 주지도 않고, 다양한 겹으로 층층이 싸여 있고,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제시해주는 것 - 바로 그 이유로 어쩌면 그 책이 좋은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앨런 베넷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짧은 소설인데요. 책의 줄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영국 여왕이 독서에 푹 빠져버리는 바람에 주변 대신들을 곤란하게 하다가 결국 직접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원래 책을 거의 안 읽던 여왕이 책을 읽게 된 계기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책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서 아첨, 기만이 아니라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었죠. 짧게 인용해보겠습니다.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위가 낮은 사람,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사람, 가장 외롭고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책은 여왕에게 했듯 똑같이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알쏭달쏭한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것이 점차 자신의 것이 되고, 그 결과 나조차 몰랐던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립니다. 그렇게 결국 ‘독자’이자 여왕은 ‘다음 단계’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깐 진중문고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진중문고 독자들은 단지 부대에서만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었던 것이 아닙니다. 병사들은 점차 자신을 초대하는 책들을 읽다 보니 관심사가 넓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이 시행되어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자 그들은 그간 자신이 읽었던 책들로 생긴 관심사에 따라 의대, 법대, 철학대 등에 가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대학 진학을 결심한 중요한 계기는, 가장 좌절스러운 시기에도 읽어나갔던 책들이 보여준 새로운 세계였죠. 만약 진중문고가 병사들에게 필요해 보이는 정보, 그들의 세계 안에만 머무르는 서적들만 제공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좋은 독서는 미지의 세계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몰랐던 세계를 접하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은 ‘책을 펼쳐 들기 전의 독자’와 ‘미래의 독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 때문에 상대방에게 가릴 것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맺음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우리 손에 쥔 것이 책이냐 스마트폰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오늘날 사람들이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는 - 과거 가장 괴로운 장소에서 진중문고에 푹 빠졌던 병사들처럼 - 우리를 안도하며 깔깔 웃게 하고, 불안함을 잊게 하면서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고, 취약함마저 온전히 이해받고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연대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을 일상적으로 얼마나 접하고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우리에겐 더 많은 진실된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인터넷에서의 혐오 등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상당수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가장 먼저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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