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왕양명(王陽明)

2025-04-21

"이 순간, 내 마음 이처럼 맑은데(光明)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양명학(陽明學) 창시자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임종 직전 제자에게 이 짧고 명료한 말을 남겼다.

이번 사자성어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알 지, 다닐 행, 합할 합, 한 일)이다. 앞 두 글자 '지행'은 '앎과 행동'이다. '합일'은 '하나가 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대략 '앎과 실천이 하나가 돼야 한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신유학(Neo-Confucianism) 사상가 왕양명이 실천의 중요성을 따로 강조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가르친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왕양명은 저장(浙江)성의 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수인(守仁)이지만, 그가 머물던 산자락 촌락 이름을 따른 호(號) '양명'으로 주로 호칭됐다.

왕양명이 태어날 무렵, 조모가 태몽을 꿨다. 오색찬란한 구름을 탄 신선이 아이를 건네는 꿈이었다. 조부는 이름을 운(雲)으로 지었다. 분명 언어 장애인은 아니었으나, 5세가 될 때까지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름에 태몽을 누설했기 때문'이라는 한 스님의 조언을 참고해 조부는 수인으로 그의 이름을 바꾼다. 개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부가 즐기던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암송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성장기에 왕양명의 관심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어린 학동 시절엔 그를 총애하던 조부의 슬하에서 유교 경전과 시문(詩文)를 익혔다. 조숙하고 활달한 그는 15세 무렵 어린 하인 둘과 불쑥 집을 떠나 북쪽 국경 지역을 답사하기도 했다. 16세에는 집 근처 대나무를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관찰하다가 혼절한 일도 있었다. 성리학(性理學) 창시자 주희(朱熹)의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확인하려는 그의 첫 시도였다.

왕양명은 17세에 부친 친구의 딸과 혼인을 했다. 혼인 당일에 처가 인근에 거주하는 한 도교 도사(道士)와 대화 삼매경에 빠져 다음 날 새벽에야 귀가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큰 키에 엉뚱한 기질이 다분하던 그가 청년이 되자 학업에 정진하더니 28세에 진사가 됐다.

암군 주후조(朱厚照)의 통치기가 시작된 이후 그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환관 유근(劉瑾)과 정면으로 대립하여 대중 앞에서 곤장 40대를 맞은 일도 있었다. 시련이 계속됐지만 군사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해 토비(土匪)들을 토벌하기도 하고, 왕족의 반란을 신속히 진압하기도 했다.

주된 관심사였던 유교 철학 분야에선 더 큰 성취를 이뤘다. 귀양살이나 다름없던 귀저우(貴州)성의 롱창역(龍場驛) 역승(驛丞)으로 재임하던 시절, 그는 훗날 양명학 또는 심학(心學)으로 명명되는 신유학 철학 체계의 틀을 마련한다.

그에겐 깨우친 것들을 뒤로 미루지 않고 다른 지식인들과 논쟁하며 바로 검증하는 습관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처럼 그도 제자들과 소탈하게 대화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하루는 남대길(南大吉)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탕한 성격의 지방 관료가 그에게 질문한다. "제가 업무를 처리할 때 잘못이 많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선 그것에 대해 왜 한 마디 말씀도 없으십니까?" 왕양명이 되물었다. "대체 어떤 잘못을 말하는 것인가?" 대길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게 그것을 이미 말했다." 대길이 놀라 묻는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가 반문했다. "그럼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잘못인지 알았는가?" 대길이 짧게 대답했다. "양지(良知)로써 압니다." 왕양명은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 '양지'가 바로 내가 늘 강학했던 것 아닌가?" 대길이 인사하고 길을 떠났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지'는 요즘 기준으론 '선악(善惡)에 대한 타고난 인식과 분별'을 의미한다. 왕양명은 관료 겸 유교 철학자로서 스스로 지행합일의 경지를 선보이고 57세에 세상을 떴다.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기록한 '전습록(傳習錄)'이 전해지고 있다.

지행합일. 쉬운 네 글자가 아니다. 현실에서 '언행일치'로 칭송받는 삶을 지속하기도 수월하지 않다. 왕양명이 강조한 지행합일의 삶은 과연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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