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 업고 달래며 공부와 사투
‘엄마+공시생’ 왜 늘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노을씨(가명)의 책상 위 스탠드가 켜진다. 9세, 8세 두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까지 허락된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남짓이다. 이 불빛이 꺼질 때까지 그의 하루는 짧은 시간들로 쪼개져 흐른다. 아이들을 깨워 등교를 준비시키고, 남편을 배웅한 뒤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오후 5시,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가 두 번째 공부 시간이다. 주 2회 있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라면 이 루틴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재우고 밀린 집안일을 끝내면 밤 11시를 훌쩍 넘긴다. 알람은 다시 새벽 5시에 맞춰진다.
엄마와 공시생이 공존하는 하루
‘공부-돌봄-공부-돌봄’이 쉼표 없이 반복되는 삶, 이씨의 하루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이씨처럼 영유아·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이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이른바 ‘맘시생’의 일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맘시생’을 검색하면 2만1000건이 넘는 해시태그와 콘텐츠가 줄지어 등장한다.
맘시생의 기록은 전형적인 ‘워킹맘 브이로그’나 ‘공시생 공부 로그’와는 결이 다르다. 화려한 편집도, 성취의 순간만 골라낸 서사도 없다. ‘순공’ 시간까지 육아와 공부는 늘 같은 시간표 안에서 충돌한다. 이들의 기록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 하루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공부 자체보다는, 공부하면서 해내야 할 일들이 더 힘들었어요. 집에서 공부하다 보면 주말에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죠(웃음).”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사립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이씨는 출산 이후 복직하지 못했다. 수업 준비와 현장 운영을 육아와 병행하기에는 체력도, 시간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대안을 찾던 그는 ‘교육행정직’이라는 직렬을 알게 됐다. 비교적 예측 가능한 퇴근 시간,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그를 붙잡았다.
벌써 2년차, 맘시생의 시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조급함을 덜어내지 않으면 이 여정을 버티기 어렵다. 흔들릴 때마다 그는 그간의 기록을 되짚는다. 기록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장치이자, 같은 조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이어지는 통로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여기까지 온 자신이 기특하지 않냐. 본인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별것 없는 제 기록이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말도, 다시 저를 붙잡아줬고요.”

‘성공한 엄마’보다 ‘성장하는 엄마’
‘맘시생’은 개인의 서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길어진 돌봄 공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낮아진 소득 안정성, 길어진 육아휴직은 MZ세대 여성의 경력을 자연스럽게 멈춰 세웠다. 자격과 라이선스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노동시장 안에서 ‘공부하는 엄마’는 선택이라기보다 생존 전략에 가깝다.
임가현씨(가명)도 그 흐름 한가운데 있다. 생후 50일을 넘긴 신생아를 키우며 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인 그는 자신의 수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아기 띠 속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끝내 고개를 떨군 채 잠드는 순간까지 담긴 영상은 조회 수 135만회를 넘겼다. ‘공부하는 엄마’의 현실을 압축한 장면이었다.

임씨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비어있는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공부는 공백을 메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결정권 없는 업무’ ‘관행처럼 반복되는 야근’ ‘라이선스 없는 경력의 한계’를 체감했다. 조직을 옮겨도 구조는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래 걸리더라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길,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전문직을 택한 이유다.
“성공한 엄마보다, 성취하고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이가 제 모습을 보며 인생은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해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제주에 사는 윤영미씨는 자신을 ‘맘시생 2회차’라고 부른다. 첫 번째 도전은 주말부부를 끝내기 위한 이직 준비였다. 갓난아이를 키우며 공부했고, 실제로 이직에 성공했다. 두 번째 도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시작됐다. 둘째 출산 이후 염색체 미세중복 소견을 받았고, 돌쟁이 아이를 업은 채 대학병원을 오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복직 이후 정상적 직장 생활이 가능할지조차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회계 책을 펼친 것도 그 무렵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는 시간을 그는 공부로 채웠다. 그렇게 시작한 ‘버티기 위한 공부’는 점차 방향을 바꿨다. 이후 둘째가 유전적 이상 가능성이 작다는 최종 소견을 받았지만, 그는 책을 덮지 않았다. “이 공부가 어떤 일이 생겨도 가족과 자신을 동시에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회계사·세무사 시험을 선택한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도 작용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그는 직장을 옮기거나 육아휴직이 길어질수록, 어렵게 쌓은 성과는 쉽게 잊혀졌다. 그때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설명해줄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돌발 변수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어린 둘째는 갑작스럽게 열이 오르기 일쑤다. 윤씨는 계획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최소 4시간은 어떻게든 나온다”며 “낮잠 시간, 혼자 노는 시간, ‘육퇴’ 이후를 모아 정산해보면 위기 속에서 오히려 공부량이 늘어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SNS 기록은 그의 또 다른 전략이다. 정기적인 학원이나 스터디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스타그램은 그에게 ‘스터디 매니저’ 역할을 한다. 순수 공부 시간을 기록하며 자신을 점검하고, 다른 회시생·세시생들의 일상에서 자극을 받는다. 그는 멀리서나마 전우애를 느끼게 하는, 외롭지 않게 해주는 장치라고 표현했다.

곱지 않은 시선과 멈출 수 없는 응원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지방직 공무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51.3%다. 특히 지방직 9급은 비교적 예측 가능한 근무 시간과 제도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육아기 여성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맘시생은 경력 단절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멈춘 경력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출발선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에게 공부는 응원만 받는 선택이 아니다. “왜 지금이냐”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견뎌야 하고, 때로는 설명해야 할 몫까지 감당해야 한다.
조현지 노무사는 “고학력 여성의 재진입을 흡수할 수 있는 민간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나이 제한이 없고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공직이나 전문직으로 여성 인력이 이동하는 것은 개인의 선호라기보다 구조적 귀결”이라고 짚는다. 또한 그는 “맘시생의 선택은 ‘용기 있는 도전’이 아니라, 다시 일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그나마 지속 가능한 경로를 계산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맘시생’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이가 잠든 사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 선 시선과 뜨거운 응원 사이에서, 엄마들은 오늘의 책임을 감당하며 자신의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