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어떻게 ‘잘’ 살아볼 수 있을까. 거창한 목표보다 먼저 손에 잡히는 질문이 있다. 내년에는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쉬느냐. 의식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선택들이 결국 삶의 결을 만든다. 새해를 앞두고, 라이프팀 기자들이 일상에 스며들 트렌드를 미리 짚어봤다.
감성 아웃도어룩

올 하반기 패션 신을 조용히 점령한 ‘그래놀라 걸’ 트렌드는 새해에 접어들며 한층 더 매끄럽게 도시로 내려올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을 위해 그래놀라를 먹으며 야외 활동을 즐기는’ 이미지로 완성된 ‘그래놀라 걸’ 패션은 아웃도어는 물론 도시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느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의상이다. 갈색, 베이지, 올리브처럼 자연을 닮은 색감의 플리스나 플란넬 셔츠는 그래놀라 코어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2026년의 그래놀라는 좀 더 정제된다. 산에서 막 내려온 차림이 아니라, 도심의 카페와 갤러리에도 어울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업계 한 홍보 담당자는 샤넬 2026 공방 컬렉션의 집업 스웨터를 내년의 히트 아이템으로 꼽았다. 아웃도어웨어에서 익숙한 하프 집업 디자인을 런웨이로 끌어올린 이 스웨터는 도시와 자연,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린다. 여유 있는 실루엣의 집업 톱에 프린트 스커트를 매치한 스타일링은 ‘꾸안꾸’의 다음 단계에 가깝다. 멋을 낸 티는 없지만, 선택의 안목은 분명한 옷차림. 그래놀라 코어가 지향하는 2026년의 일상이다.
스몰 리프레시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소파를 바꾸려면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쿠션 커버 하나, 러그 한 장, 미니 무드등 하나는 생각보다 쉽게 장바구니에 담긴다. 2026년 리빙 트렌드는 바로 이 ‘스몰 리프레시’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로 공간 분위기를 환기하는 ‘전환의 기술’, 그리고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이 짧은 결단의 리듬이 내년 리빙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MZ세대의 기준은 명확하다. 언제 사도 부담 없는 가격, 질려도 미련 없이 바꿀 수 있는 크기, 그리고 구조를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선택. 집 꾸미기는 더는 대대적인 공사가 아니다. 공간은 사용자 컨디션에 맞춰 수시로 새로고침되는 ‘감정 인터페이스’가 된다. ‘스몰 리프레시’는 컬러를 소비하는 방식도 바꿔놓고 있다. 대담한 색에 대한 욕망은 여전하지만, 집 전체를 칠하는 과감한 선택은 한발 물러선다. 대신 미니 오브제, 사이드 조명, 작은 스툴처럼 정확한 지점에만 색을 꽂는 전략이 부상할 것이다. 관계자들은 “작은 아이템일수록 실험할 수 있고, 부담 없는 가격은 리스크를 줄여준다”며 “2026년은 ‘작게 들인 색 한 점’이 거실 분위기 흐름을 좌우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크골프

골프를 취미로 즐기는 주부들 사이에서 요즘 유독 자주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새 클럽도, 신상 웨어도 아니다. 화제의 중심은 ‘파크골프 지도사 자격증’이다. 골프의 연장선에 놓인 이 생활스포츠가 뜻밖의 ‘자격’이라는 옷을 입으며 주목받고 있다.
인천 송도에 거주하는 이민진씨(50)는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골프 모임 15명 가운데 네 명이 얼마 전 파크골프 지도사 2급을 동시에 땄어요. 내년쯤 학교 방과후교실이나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관련 강습이 늘 거라 지도자 수요가 클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골프를 치는 젊은 엄마들까지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에요.”
이씨 역시 사단법인 한국스포츠복지진흥원이 주최한 2기 과정에 참여해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3개월 동안 주 1회 이론과 실기 수업을 이수하면 2급 응시 자격이 주어지고, 이후 1년이 지나면 1급 자격에 도전할 수 있다.
파크골프의 확산 배경에는 낮은 진입 장벽이 있다. 채 하나만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고, 18홀 한 라운드를 두 시간 안에 마칠 수 있어 체력 부담이 적다. 고령층과 장애인, 어린이 등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기존 골프보다 ‘생활형 스포츠’에 가깝다.
힙한 집밥

최근 150만부가 팔리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화제의 요리책이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힙합 아이콘 스눕 독(<스눕 독의 도파민 키친>)이다. 그는 운동 후에 먹는 스무디를 만들기도 하고, 무대 뒤에서 먹는 간편식을 변형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에게 요리는 내 취향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힙’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오픈서베이의 트렌드 웨비나는 2026년 식생활 트렌드로 ‘물가와 건강 다 잡는 집밥 열풍’을 주목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내식화’ 트렌드를 주도한 세대는 2030이다. 그들은 “‘절약’을 넘어 ‘독립’과 ‘미식 경험’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고물가 시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외식 비용의 부담감도 영향을 줬다. 지난 1년간 식생활 비용 절감을 위해 집밥 먹기(45.1%), 외식 줄이기(41.6%)를 실천한 이들이 늘었다. 날로 발전하는 밀키트는 초보 자취생에게 요리라는 허들을 넘게 하는 발판이 됐다.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는 “이제 맛없는 냉동 라사냐와는 작별을 고할 때”라며 2026년 식품 트렌드 중 하나로 고급화된 냉동 요리를 꼽았다. 전자레인지에 5분만 돌리면 이탈리아식 아란치니와 나폴리식 피자, 정통 베트남식 양지쌀국수 등 고품질 재료로 만든 ‘세계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대다.
로봇펫+AI

최근 일본에서 가방에 매다는 ‘액세서리 로봇’이 등장하자 SNS가 빠르게 반응했다. 유카이 엔지니어링이 선보인 소형 로봇 ‘미루미(Mirumi·사진)’는 기능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묘하게 강력하다. 나무늘보를 닮은 외형, 소리에 반응해 수줍게 고개를 돌리는 동작, 쓰다듬으면 반응하는 촉감 기반 인터랙션까지. 인형은 인공지능(AI) 행동 알고리즘을 통해 외부 자극이 없어도 스스로 고개를 움직여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루미는 “지하철에서 아기가 조용히 바라볼 때의 시선”을 구현했다는 제작사의 설명처럼 ‘느낌’을 정면에 내세운 제품이다.
미루미 사례는 2026년을 향해 가속화될 로봇펫 트렌드를 보여준다. 외로움, 정서적 피로, 관계 과잉 속에서의 거리 두기. 로봇펫은 이 틈새를 정확히 파고든다. 미루미는 ‘보고, 반응하고, 존재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부담 없이 곁에 두는 생명체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흥미로운 점은 로봇펫 트렌드에서 AI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생성형 AI, 대화형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로봇펫은 오히려 말을 줄인다. 대신 행동과 반응에 집중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저강도 AI 교감’이라고 부른다. 기술은 숨고, 감정은 전면에 내는 것이다.
셀프 뷰티

전 세계가 K뷰티를 주목할 때 ‘금손’ 한국인들은 윗길로 향한다. 뷰티 인플루언서의 노하우를 교재 삼아 집에서 관리하는 셀프뷰티 트렌드가 2026년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뷰티 관련 숍을 예약하고 방문하는 번거로움을 덜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으로 나만의 개성이 담긴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이다.
에이블리의 올 하반기(7~11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집에서 손쉽게 피부, 네일, 헤어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셀프뷰티’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단순 매니큐어에서 셀프 젤네일, 네일팁 등 ‘홈네일’에 그치지 않고 에스테틱숍이나 피부과를 가야만 했던 영역까지 셀프케어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집에서 손쉽게 피부, 얼굴형 등을 관리할 수 있는 뷰티 기기 판매가 늘며 ‘뷰티 디바이스’ 검색량은 291% 증가했으며, ‘리프팅 밴드’도 검색량과 거래액이 각각 늘었다.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속눈썹 펌, 연장도 셀프로 할 수 있게 됐다. 인조 속눈썹에 글루가 결합된 일체형으로, 별도의 속눈썹 풀 사용이 필요 없는 ‘노글루 속눈썹’ 거래액은 890%, 검색량은 206% 늘었다. 속눈썹 펌에 필요한 재료를 한곳에 모은 ‘속눈썹 펌 키트’ 검색도 31% 증가할 정도로 인기다. ‘홈 뷰티살롱’ 개업,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내년에도 이어지지만, 그 판세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많은 팔로어 수가 더 이상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글로벌 SNS 데이터 분석 기업 피처링의 ‘2026 인플루언서 마케팅 트렌드 리포트’는 100만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한 메가(Mega) 인플루언서보다, 팔로어 수는 적지만 탄탄한 팬층을 지닌 마이크로·매크로 인플루언서가 안정적인 구매 전환을 견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피처링 솔루션 고객이 가장 많이 검색한 인플루언서 팔로어 구간 역시 1만에서 10만(38.5%)이 가장 높았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이 더 주목받는 요즘, 각 브랜드는 인플루언서를 통한 직접 판매를 매출 증대의 수단으로 삼고, 공동구매가 커머스 중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팬과 스타의 관계를 뛰어넘은 인플루언서와 소비자 간 공감과 신뢰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콘텐츠와 커머스가 밀접하게 결합한 틱톡숍과 소셜미디어 상품 링크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수수료를 받는 어필리에이트(제휴) 마케팅도 더욱 확대될 거라는 전망이다. 누구나 인플루언서를 꿈꿀 수 있지만, 광역 공략형보다는 타깃 전략이 유효해질 것이다.
공간 여행

2026년의 여행은 유명한 장소를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디를 찍고 왔는지가 아니라, 머무는 동안 무엇을 보고, 먹고, 만들고, 참여했는지가 여행의 밀도를 가른다. 여행의 기준점이 장소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 변화의 출발점은 서울 성수·한남 일대에서 확산된 ‘공간 브루잉(space brewing)’ 문화다. 카페 하나를 중심으로 전시, 쇼룸, 공연, 워크숍이 겹겹이 쌓이며 공간은 취향과 경험을 발효시키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이 감각은 이제 도시를 벗어나 지방 여행지 전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폐교, 근대 산업시설, 오래된 창고와 여관 역시 리모델링을 거쳐 체험형 체류 공간으로 재탄생 중이다. 로컬 예술가의 작업실과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다이닝, 단기 클래스가 결합되며 여행지는 점점 ‘코스’보다 ‘생활 반경’에 가까워진다. 짧은 체험보다 하루의 리듬을 바꾸는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여행은 목적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공간이 설계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그 지역의 하루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2026년의 여행은 체크리스트를 벗어나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남을 것이라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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