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기행]대구 내당성당

2024-12-23

대구 내당성당,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설계하다.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린시절 동네 예배당은 일찍이 경험한 작은 종교건축이었다. 빨간 양철지붕과 종탑은 고딕 형식이었고, 방석을 깔고 앉았던 마룻바닥은 회중석이었다. 비로드 커튼의 성탄절 공연무대는 제대 강단이었고, 교회 앞마당은 공공 커뮤니티의 마을 광장이었다.

로마 카타콤에서부터 초기 기독교,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에 이르는 서양 건축의 역사는 곧 종교건축의 흐름이었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313년) 이후, 교회는 바실리카 형식이었고 입구에서 회중석, 제단, 십자가 정면에 이르는 위계는 오늘날까지 2,000여 년을 지속해온 평면형식이었다. 하늘을 향한 첨탑, 높은 내부 공간, 스테인드글라스의 중세 고딕은 교회의 전형으로 지속되어 왔다.

1900년대 초, 서양 선교사들이 설계하여 중국인 기술로 이 땅에 지어진 붉은 벽돌과 고딕 첨탑의 대구 계산성당, 서울 명동성당, 비잔틴 돔의 전주 전동성당, 지금은 이 땅 근대건축의 유산이 되었다.

바티칸 공의회' 전례 정신을 반영한 설계

계산성당이 세워지고 60여 년이 지난 1966년, 대구 서구 내당동 언덕 위에 특별한 성당 건축이 세워졌다. 진입 마당 오르막에서 나타나는 언덕 위의 내당성당(內唐聖堂)은 3단 스텝 피라미드 형태의 기하 입방체의 건축이다. 익숙하게 보아왔던 붉은 벽돌, 경사지붕, 높은 십자가 첨탑과는 다른 성당의 모습이다.

비엔나 대학교 교수 건축가 오토카 울(Ottokar Uh·1931-2011) 설계의 성당은 지금까지의 긴 방향의 바실리카 평면과 고딕 첨탑의 전형에서 벗어난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성당 형식이다. 외국에서도 선례를 찾기가 힘든 획기적인 성당설계가 어떻게 한국 땅에서 실현이 됐을까? 그 당시,

성당을 설계할 당시 1965년, 로마에서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끝난 시점으로 새로운 가톨릭 전례 정신이 세상에 발표되었다.

미사를 각 지역 언어 집전을 허용하고 엄격한 성직자 중심에서 평신도의 참여를 강화하는 소통과 변화를 요구는 2000년 가톨릭 개혁의 시점이었다. 내당성당은 개방된 문, 신자와 가까이 마주하는 낮은 제단의 실천을 설계한 것이다.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세상에 채 퍼져 나가기도 전, 세계 어디서도 실천되지도 않은 전례 정신의 성당이 변방의 선교지였던 이 땅에서 지어진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소통과 개방, 낮은 곳으로 오신 하느님의 성당.

성당은 엄숙하고 장중한 정면이나 출입문을 강조하지 않는다. 정방형 평면의 네 모퉁이 양쪽 여덟 개 출입문이 있어 쉽게 회중석으로 출입하게 된다. 활짝 열린 출입문은 신도 중심의 참여와 소통, 개방의 새로운 가톨릭 전례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처음 설계에는 출입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서 회중석보다 넓은 홀의 소통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회중석 내부로 확장되었다. 지금의 네 곳 출입 부는 반투명 유리로 구분되어서 방풍실로 이용된다.

회중석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성이 없는 사방공간이 넓게 나타난다. 곧 실내에 익숙해지고 나면, 회중석과 제대, 전후좌우 방향성이 없는 전체공간 속에서 일체화되는 나를 느끼게 된다. 회중석은 'ㄷ'자 형태 3방향으로 배치한다. 회중석보다 몇 단 낮은 가운데에 제대가 있다. 장 방향 긴 거리가 아닌 일정한 거리 가까운 자리에 둘러앉은 신자들은 낮은 곳의 제대를 편히 바라보게 된다. 신도 회중석보다 낮은 위치의 제대는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을 의미하는 전례 정신의 실천이다.

로만 십자가(Roman cross)가 내재된 건축.

반듯한 정방형 건축 평면은 길이 5m, 가로세로 각 5개 스판(Span)과 높이 3m 모듈을 기준으로 설계하였다. 회중석에는 노출된 십자 기둥, 한옥 대들보처럼 상부 구조가 노출되고 비워진 공간은 다락 창고 같은 초기예배소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대 상부의 점층적 천장은 가로세로 균등한 십자(cross) 공간 형태이며 그 상부는 스테인드글라스 빛 디자인 천장이다. 십자가 현판이 매달려 있는 제대 상부는 하늘이 내린 성스러운 십자가로 느껴진다. 가로세로가 균일한 로만 십자가(Roman cross) 형상은 건축 배치, 평면, 천장, 구조, 성당 건축 전체에 내재하고 있는 설계 개념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성당은 겹친 십자가의 형상과 다이아몬드(하느님의 고귀한 보물) 결정체를 상징하는 조형으로 나타난다. 성당 건축의 형태, 내부 기능, 구조 요소가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구조주의 또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주의 건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954년 건립된 코르뷔제 설계의 롱샹 성당은 콘크리트 경사 벽면과 곡선, 유기적 빛의 건축으로 전통적 형태에서 벗어난 건축이었다.

개조공사로 원형이 변형되다.

6·25전쟁 이후의 1966년은 제1차 경제개발계획 마지막 해였고, 성당 주변에는 한센인 수용소가 있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이곳 주변 초가집만 있는 동네였고 언덕 꼭대기의 현대적 성당 모습은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설립 당시, 초대 주임신부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서기호(루디) 신부였다. 고국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 성전 건축비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그 기금으로 성전이 지어졌다고 한다. 건축 설계는 비엔나 대학교 오토카 울 교수를 소개하면서 먼 이국땅에 유럽 건축가의 작품이 세워지게 되었다.

설계도를 보고는 공사를 맡을 시공사가 없을 정도로 당시의 기술력 수준으로 어려운 공사였다고 한다.

1966년 11월 힘들게 축성된 성당은 20년 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신자 수 증가로 인한 회중석의 부족과 시설의 노후화로 1988년 대대적인 개조공사를 하게 된다. 'ㄷ'자형 회중석은 일반적인 종 방향 배치방식으로 개조되면서 초기 건축원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당시 유럽의 건축 전문지 Domus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중앙부 전체를 둘러싼 ‘ㅁ’자 배치 회중석이다.

다시 원형으로 복원하다.

개조공사 이후, 초기 성당의 가치를 기억하는 교구와 신자, 건축학계에서는 초기 건축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고 그래서 성전 복원은 곧 숙원사업이 되어왔다. 2021년 박장근(베드로) 신부가 부임하며 이듬해 성당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손술영)를 결성, 교구청의 적극적인 후원과 공사비 지원, 신자들의 모금으로 2023년 초, 복원공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의 공사설계도가 없어서 마치 유적발굴 현장처럼 바닥과 벽 부분을 조심스럽게 해체하며 초기 성당 형태를 되찾았을 수 있었다고 한다.

건립공사 당시, 울 교수는 고려청자 색의 타일을 구하기 위해 경주의 도자기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타일을 주문했을 만큼 애정을 기울였다고 한다. 복원공사에서도 새 창을 내느라 철거했던 타일 벽 복원을 위해 당시의 타일 색을 구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또한 60여 년의 세월 동안 숨겨져 있었던 여러 건축 부분들을 찾아내고 어려운 복원공사를 거쳐서 지난 4월, 초기 건축 모습의 성전으로 복원하게 되었다.

오토카 울 교수의 건축, 건축 문화재로의 기대

먼 이국땅에 성당을 설계한 오토카 울(Ottokar Uhl·1931-2010) 교수는 설계 후 대구에 날아와 주교관에 머물면서 공사 현장을 지도했다. 늦어지는 공사 진척으로 체류 마지막 날까지 열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만약 유럽에 세워졌다면 건축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며, 독창적 건축작품의 답사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울 교수는 가톨릭교회의 현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전통적 교회 건축을 재해석하여 열린 공간과 공동체 중심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그는 오스트리아 건축상(1963년), 비트겐슈타인 상(1996년), 비엔나 황금 명예상(2001년)을 수상했다.

성당이 복원되면서 천주교계는 물론 국내외 건축계의 새로운 관심 받고 있으며 건축 문화재 등재 준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 성당건축 흐름과 연결

대구 최초의 서양식 성당은 1903년에 세워진 ’계산성당(설계, 프와넬 신부)’으로 대구의 화가 이인성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청라언덕 위 새로 지은 제일교회와 서로 마주하는 계산성당은 120여 년 시간으로 대구근대골목 답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60여 년 후, 1966년에 세워진 ’내당성당(설계, 오토카 울교수)‘은 바티칸 공회의 가톨릭 개혁 정신을 반영한 국제주의의 근현대건축이다. 유럽 건축가가 설계한 혁신적 성당은 종교사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건축으로 널리 알려져야 할 대구건축의 유산이다.

계산성당 건립 120여 년 후, 2016년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범어성당(설계, 현대건축)‘이 건립되었다. 100m 길이의 성당 건축, 100m 길이의 광장의 상징성과 함께 대성당(2,500석), 다목적공연 홀(410석), 100주년기념관, 갤러리는 도시의 공원과 시민 문화공간 역할의 열린 성당이다. 60년의 간격으로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대구 성당 건축의 역사와 그 흐름을 읽게 된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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