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모델은 고대 리키아 지역 미라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Santa Nicholaus, 270~343)다. 평소 이웃을 몰래 돕던 그는 매음굴에 팔려 갈 가난한 세 자매 집 굴뚝에 금화 주머니를 떨어뜨려 자매를 구해주었다. 12세기 프랑스 수녀들은 성 니콜라스 축일인 12월 6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주는 풍습을 정착시켰다. 17세기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그들식 발음으로 ‘신터클라스’라 한 것이 미국식 산타클로스의 기원이다.
미라의 부호 아들 니콜라스는 조실부모 후 막대한 재산을 자선하며 성직에 들어갔다.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된 그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 교리를 수호해 명성을 높였다. 누명을 써 사형대에 선 3명의 장군을 변호해 풀어 주었고, 풍랑을 잠재워 난파 위기의 선원들을 구해주었다. 어린이를 죽여 고기로 팔려 한 흉악한 정육점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등 수많은 이적과 선행을 베풀었다. 그는 빈자·죄수·선원·어린이의 수호자가 되어 최고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리키아는 현재의 튀르키에, 아나톨리아 반도 남부 지역으로 로마제국에 속했으나 자치권이 강했고 미라는 그 중심 도시였다. 당시의 암벽 묘지들과 원형극장, 그리고 520년 건립한 성 니콜라스 교회의 유적이 남아있다. 크고 작은 돔의 구조로 지어진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시대를 거치면서 흙에 묻힌 폐허를 1862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가 복원해 현 모습을 되찾았다. 성 니콜라스의 생애와 에피소드를 그린 프레스코화들이 생생히 남아 성인의 전설을 되살리고 있다.
북극에 사는 붉은 옷의 후덕한 백인 털보 할아버지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성탄 전야에 온다는 산타는 19세기 미국 대중문화가 만든 근대의 신화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아이들을 꿈꾸게 하는 크리스마스의 미덕은 1700년 전, 성 니콜라스가 실천했던 역사적 진실이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