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크리스마스의 비화 풀기

2024-12-23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 300년 후에 만든 기념일

크리스마스는 진정 아기 예수의 탄생일일까? 그 누구도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을 알지 못한다.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일이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크리스마스가 최초로 기념된 건 서기 336년경 이탈리아 로마에서였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축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기독교 교회는 로마의 농신제 사투르날리아, 게르만의 죽은 자의 숭배, 켈트족의 동지 의식을 대체하기 위해 축제 달력을 도입했다. 기독교는 예수를 ‘세상의 빛’으로 여겼기 때문에 동지 및 태양의 부활과 예수의 연관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빛과 그리스도의 탄생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단어 자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켈트어에서 유래한 노이오(새로움)와 헬(태양)의 합성어로 보기도 하고 라틴어 나탈리스(탄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12월 25일은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자리매김을 한 것은 중세 유럽에서였다. 며칠 동안 축하 행사가 지속되었으며 특별한 미사, 행렬 및 잔치가 벌어졌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 탄생일에 선물을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이 생겨났다.

수 세기에 걸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많은 전통이 이어져 왔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물론 화환, 싸구려 조명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이다. 이 전통은 16세기 독일 기독교인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는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행사였다.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요리가 있지만 칠면조, 훈제 연어, 초콜릿 등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가족과 함께 맛있는 요리로 가득 찬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수공예 선물을 구입하고 지역 특산품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12월 25일은 기독교인들만의 종교 축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서는 이날 크리스마스 행사 대신 빛의 축제인 하누카 행사를 한다. 또한 여러 문화권에서 많은 이교도 신들이 탄생한 날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오스의 서거일

12월 25일은 산타클로스가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날로 인식되는 것이 압도적이다. 산타클로스는 불우한 이웃에 관대한 인물로 4세기 기독교 성자 성 니콜라오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됐다.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성 니콜라오스의 모습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에서 박해의 희생양이 된 4세기 소아시아 뮈라의 주교였던 실존 인물인 니콜라오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성인 중 한 명인 성 니콜라오스는 그의 관대한 성격을 강조하는 수많은 전설을 낳았다.

그는 세 명의 가난한 소녀들에게 결혼할 수 있도록 지참금을 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폭풍우 속에서 뮈라 마을로 가는 밀 화물선을 구하고 푸줏간 칼에 꽂힌 세 소년을 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12월 6일에 니콜라오스를 죽였다. 참수된 그의 목에서 기름 분수가 솟아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는 니콜라오스를 시성하기로 결정하고 매년 12월 6일 성인식을 올렸다. 나중에 이탈리아 군인들이 튀르키예를 점령했을 때 마을의 수도사들은 그들에게 바리에서 온 성 니콜라오스의 무덤을 보여 주었다. 관을 열어보니 성인의 뼈가 기름으로 목욕한 채로 있었다. 군인들은 그 뼈를 상자에 담아 바리로 가지고 돌아갔다.

그 후 12세기에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로렌의 한 기사가 성 니콜라오스의 유물이 보관돼 있는 바리를 지나갔다. 이때 그 기사는 이 성인의 뼈 몇 개를 프랑스 북부로 가지고 왔다. 수 세기에 걸쳐 성 니콜라오스 숭배는 오늘날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주민들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발전했다.

12월 5일과 6일 밤에 성 니콜라오스는 오두막집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순종했는지 묻는다. 아이들은 벽난로 옆이나 문밖에 신발과 함께 설탕, 우유, 당근을 성 니콜라오스를 태운 노새를 위해 남겨둔다.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한 어린이는 선물을 받지만 장난을 친 어린이는 선물을 받지 못한다. 후자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어두운 악당인 푸에타르 할아버지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네덜란드인이 신대륙으로 가져온 신터클라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은 북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성 니콜라오스 숭배를 종식시켰고, 가톨릭에서 유래한 이러한 헌신적인 행위를 금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주민들은 개신교 신자이지만 신터클라스 축제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17세기에 미국으로 이민 올 때 이 신터클라스 축제를 가지고 왔다. 네덜란드인들은 뉴암스테르담을 세웠고 후에 뉴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뉴욕에서 성 니콜라오스 데이를 기념하는 네덜란드 풍습은 미국인들의 가정으로 빠르게 파고 들어갔다. 이때 네덜란드어 신터클라스(SinterKlaas)는 영어 산타클로스(SantaClaus)로 교체됐다.

기독교 가정에서는 이 어린이 축제를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관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산타클로스는 12월 5일 밤이 아니라 12월 24일 밤에 순회하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는 19세기 들어 큰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1821년, 미국의 성직자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는 착한 산타클로스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썼다. 이때 그는 산타클로스를 뚱뚱한 할아버지로 둔갑시켰다. 주교장이 드는 지팡이는 사탕 지팡이로, 노새는 순록 팀으로 바뀌었다. 산타클로스는 다소 마른 주교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뚱뚱한 남자가 됐다.

많은 문화권에서 녹색이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 때문에 산타의 색은 녹색이었다. 이 색은 다산의 여신인 비너스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는 종종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녹색이 건강을 상징하는 색으로 산타의 유쾌한 모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초록색은 자연을 상징해 크리스마스트리와도 관련이 있다. 산타의 의상이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묘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빨간색은 종종 태양, 따뜻함, 다산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성 니콜라우스의 의상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 빨간색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1863년 뉴욕 하퍼스 일러스트 위클리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토마스 나스트는 산타클로스를 흰 모피와 넓은 가죽 벨트가 달린 빨간 정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나스트는 수백 개의 성탄절을 그려 집단 무의식 속에 이 캐릭터의 이미지를 표준화했다.

1885년 나스트는 산타클로스의 은신처가 북극에 있다고 생각해 두 명의 어린이가 북극에서 미국으로 가는 산타클로스의 경로를 추적하는 모습을 그렸다. 1년 후인 1886년, 조지 웹스터는 나스트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산타의 장난감 공장과 집이 실제로는 북극의 눈 속에 있다는 창작의 글을 썼다.

마침내 1931년, 코카콜라사는 일러스트레이터 해든 선드블롬의 손을 거쳐 산타에게 새로운 모습을 부여했다. 산타클로스는 유쾌한 분위기와 경쾌한 태도를 되찾고 바지와 빨간 튜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코카콜라의 목표는 소비자들이 한겨울에도 코카콜라를 마시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상업화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성육신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다. 크리스마스는 묵상과 나눔, 기쁨을 위한 시간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상징성이 풍부한 날이다.

신앙이나 문화가 무엇이든 우리 모두는 가족, 사랑, 관대함을 축하할 수 있는 이 기회를 기뻐할 수 있길 바란다. 트리를 장식하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든, 선물을 주고받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순간을 나누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 글=최인숙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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