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감금과 폭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여행객들 사이에 '캄보디아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범죄 우려가 커지자 현지 여행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이런 불안심리가 동남아 전역으로 번지면서 여행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동남아는 국내 주요 여행사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인 만큼,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업계 전반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업계 등에 따르면 외교부는 지난 16일 0시를 기점으로 캄폿주 보코산 지역, 바벳시, 포이펫시 등 일부 지역을 여행경보 4단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는 여권 효력이 정지되는 최고 수준의 조치로,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번 조치는 최근 캄보디아 내 불법 취업 알선과 온라인 도박 조직에 연루된 납치·감금 사건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외교부와 경찰에 따르면 관련 사건 신고는 2022년 20건에서 2024년 220건으로 폭증했으며 올해 8월 기준으로 이미 330건을 넘어섰다.
현지 상황이 악화되자 주요 여행사들은 캄보디아 여행상품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모두투어는 프놈펜 노선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씨엠립 부정기편 신규 모집도 중지했다. 교원투어는 12월 예정이던 인천~씨엠립 부정기편 상품 모집을 보류했으며, 놀인터파크투어 역시 이번 주 안에 캄보디아 관련 상품 노출을 잠정 중단할 예정이다.
하나투어는 일부 상품만 최소화해 운영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프놈펜은 홈페이지 지역 메뉴에서 제외했고, 씨엠립 노선은 현지 상황을 반영해 운영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캄보디아 예약 비중은 동남아 전체의 1% 미만으로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계 시즌에는 인도네시아 마나도 등 대체 여행지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랑풍선도 비슷한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캄보디아 상품은 대부분 베트남을 경유하는 씨엠립 일정으로, 여행금지 지역과 직접 관련이 없다"며 "현지 파트너사와 협력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한 단기적 타격보다 불안심리가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한국인 출국자 1942만명 중 586만명(30.2%)이 동남아 7개국(베트남·태국·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캄보디아)을 방문했다. 이 중 캄보디아 방문객은 10만6686명으로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주요 여행사 매출 구조에서 동남아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하나투어의 올해 9월까지 송출객 중 40.2%가 동남아 여행객이었고, 노랑풍선도 37%를 차지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소규모 시장이지만, 여행 불안심리가 베트남·태국 등으로 전이될 경우 단거리 노선 전체의 모멘텀이 꺾일 수 있다"며 "특히 패키지 중심의 구조상 한 국가 리스크가 인근국 예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은 소비자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 안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대체 노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협력사와 실시간으로 예약 현황과 안전 정보를 공유하며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투어 관계자 역시 "가이드 네트워크를 통해 외교부 지침을 즉시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여행 커뮤니티에서도 "캄보디아 소식이 불안하다"는 의견과 "일반 여행객에게 직접적인 위험은 크지 않다"는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여행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계자는 "동남아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높지만 특정 국가 리스크에 지나치게 취약한 구조"라며 "향후에는 중남미나 유럽 소도시 등으로 노선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