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문장의 출처 찾아가는 교수...이동진 평론가가 극찬한 이 소설

2025-12-29

일본의 독문학자 도이치 히로바 교수는 어느 날 찻잔 속 티백에 적힌 명언과 마주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괴테”(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Goethe) 특별할 것 없는 문구지만, 도이치는 출처를 찾고자 고심한다. 저명한 괴테 연구자인 그가 처음 본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한 명언의 출처를 찾아가는 교수의 이야기.’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포레스트북스)에 일본 문단이 주목했다. 스즈키 유이(鈴木結生·24)는 이 첫 장편작으로 지난해 2000년대생 작가로선 최초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국보』(동명 영화의 원작)의 저자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는『괴테는…』에 최고 평점을 주면서 “스물 남짓한 젊은 작가가 쓴 오래된 느낌의 소설에 왜 이토록 호감이 가는지 생각해 보니, 여기에는 기쁨이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아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 인간이 가진 그 근원적인 기쁨이 이 소설에 가득 차 있다”고 평했다.

일본에서 발매 6일 만에 6만 부가 팔린 소설은 지난 11월 18일 한국어판으로 나왔고 이동진 평론가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이 책은) 창작의 과정 그 자체를 다룬 메타 소설이며, 예술론적 야심을 지닌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호평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두 달만에 7만 부가 팔리며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 15일 중앙일보와 이메일로 만난 스즈키는 “한국에서 많은 독자가 내 소설을 읽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큰 격려를 받았다”며 “이 책은 괴테가 남긴 ‘말’이 번역과 전언을 거치며 변화해 가는, 말 그대로 ‘언어의 여행’을 그린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열 살 때 동일본 대지진을 목도했다. “신뢰할 수 없는 말들이 떠도는 재난 이후의 혼란을 겪으며, 절대적 진실이란 없음”을 느꼈다. 이후 자신만의 언어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의 소설이 언어와 문학에 대한 고찰로 가득 차 있는 이유다. 데뷔작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는 톨스토이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썼고, 『괴테는…』 이후에 발표한 소설 역시 찰스 디킨스를 주제로 했다.

말을 찾는 건 학자의 본분이다. 『괴테는…』의 도이치 역시 괴테 연구자들에게 수소문하고, 문헌을 모두 살피는 등 명언의 원전(原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출처는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도이치와 친한 교수가 불분명한 원문을 인용해 논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하는 일이 생긴다. 도이치는 한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간 자리에서 문제의 명언을 인용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스즈키는 “도이치는 (방송에서 명언을 인용하며) 자신이 놓여 있는 학계의 문법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으로 해방감을 느낀다”며 “하지만 완전히 그곳에서 탈출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친구인 교수가 분명하게 일탈해 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모호한 도이치의 태도를 “실제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봤다. “포장된 언어를 사용하기보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 진짜 말과 행동을 통해 나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나를 재구성하는 것. 그런 일이 문학에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엔 원전에 개의치 않고 인터넷 속 명언을 수집하는 도이치 교수의 딸이 등장한다. 2001년생인 작가 역시 소설 속 딸과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다. 스즈키는 “어릴 때부터 위키피디아를 읽는 걸 좋아했는데, 어른들로부터 ‘거짓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위키피디아를 일부러 읽는 사람이 오히려 리터러시(문해력)가 있는 사람이고, 대부분은 소셜미디어(SNS)나 인공지능(AI)으로 정보를 얻고 있다”고 했다.

스즈키는 문학을 통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언어가 마치 옳은 것처럼 퍼져 나가는 시대에, 극히 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축적된 문학의 언어가 (인간의) 노력 끝에 번역되어 (책으로) 여러분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곳에 진정한 언어를 찾기 위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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