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인생의 짐

2024-10-31

다섯 살 외손자는 눈만 뜨면 우리 집으로 온다. 우리 집에서 아침 먹고, 유치원 가고, 돌아오면 씻고, 저녁 먹고, 잠잘 때가 되어야 겨우 제집으로 간다.

작은딸은 결혼이 늦어져 우리 부부의 애를 태우다가 나이 마흔에 결혼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 작은딸이 옆집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외손자 육아도우미가 되었다.

우리 부부의 일정은 손자에게 우선순위가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고사하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조차, 자유스럽지 못하여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더구나 내가 곁에 없으면 아내 혼자로선 씻기고 먹이는 일은 물론 같이 놀아주는 자체가 힘에 부치는 짐이 아닐 수 없다.

짐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맺어진 모든 인연도 알고 보면 짐을 주고받는 관계이므로 인생 자체가 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 짐의 무게가 버거워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가 많다. 보통 사람들이 겪어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무거웠던 인생 짐을 적당히 벗어버린 노년엔 어떤 삶을 살아야 잘 살고 있다 할 수 있을까?

인생 후반전에는 건강, 돈, 친구 이 세 가지를 갖춰야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 돈, 친구는 노년에 사는 재미, 늙는 재미를 누리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노년의 행복까지 책임지는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자기만족이다. 삶의 보람을 느낄 때 자족감은 피어난다. 삶의 보람과 명분에서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더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지 않을까?

짐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쓸모가 있다는 증표 아니겠는가? 바꿔 생각하면 짐을 모두 덜었다는 것은 “이제 쓸모가 다 했다”라는 뜻이니 짐이 없다는 것보다 더 슬프고 가혹한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생 짐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노년에는 아직 내려놓지 못한 적당한 무게의 짐이 내 삶의 의미일 수도 있고,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손자 돌보는 일이 힘겨울 때면 나도 모르게 “저 애가 없었다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내 도리질하며 마음을 바꾼다.

만약,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못하고 중년이 되어버린 딸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면? 설령 결혼했어도 자식 하나 없이 사위와 딸 단둘이서만 적적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마음의 고통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짓눌러왔으리라. 아마 죽는 순간에도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할 여한이 되었겠지.

자식들의 결혼이 늦어지다 못해 아예 포기하고 사는 부모들이 흔한 세상이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늦깎이 손자 하나로 인생 짐의 버거움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멍에를 벗을 수 있었다. 오히려 다섯 살 외손주의 육아를 돕는 적당한 무게의 인생 짐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고통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찾아온다.'고 했다. 고통을 통하여 타인을 돕고 동정을 배우셨던 것처럼, 나도 도울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다.

△윤 철 수필가는 진안군 부군수 등 공직생활을 마치고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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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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