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때때로 나의 부족함과 어려움, 감추고자 하는 나의 연약함을 알게 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특히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두 아이는 성별도 나이도 성향도 다르기에 각각 다른 모습을 띤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첫째는 조용히 아빠 엄마 옆에 와서 살포시 누워 속삭인다. 둘째는 눈을 뜨면 누워있는 아빠와 엄마에게 일어나라며 조그만 두 손을 모아 엄마 아빠의 머리를 들며 소리친다. 첫째는 바로 일어나는 것보단 느긋하게 누워있다가 일어나지만 둘째는 문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가자고 한다. 새벽마다 가끔 깨서 엄마 아빠를 피곤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자기는 늘 밝고 해맑은 얼굴로 아침마다 놀아달라고 할 때 가끔은 얄밉기도 하다.
아직 둘째가 말을 하지 못해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남매간의 투닥거림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첫째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둘째가 아무렇지 않게 해맑게 다가가서 가지고 가노라면 당연히 첫째는 당황하고 짜증 날 텐데 일단은 엄마 아빠에게 먼저 얘기하고 자신의 억울함과 화남을 얘기한다. 아빠로선 먼저 둘째에게 ‘누나랑 놀고 싶었나 보네. 그런데 누나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으니 누나가 다 가지고 놀고 나서 가져가야 해’라고 얘기하고 첫째에겐 ‘동생이 갑자기 장난감 가져가서 당황했지? 아직 동생이 너무 어려서 누나랑 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게 아직 서툴러서 그래’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의 투닥거림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하며 찾아간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순간에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서 빨리 문제를 다룰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으로 돌이켜 본다면 아빠의 감정적 해결이 아이들의 성장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 아빠의 인내심은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두 아이의 투닥거림이 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투닥거림을 통해 두 아이는 서로 합을 맞춰간다. 첫째는 둘째가 다가올 땐 먼저 얘기하고 미리 준비했던 다른 장난감을 주거나 자신이 들고 있는 장난감을 스스로 결정해서 준다. 둘째는 무작정 가져가던 처음과는 다르게 누나 옆에 앉아 기다린다. 그런 상황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모습에 아빠로서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인내심은 단순히 어려운 상황을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몸과 마음도 중요하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도 나처럼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단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아이들에 대한 참고 기다림은 그 아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에서 비롯된다. 첫째와 둘째의 다름과 비슷함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며 지속적인, 깊은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가정에서 부모의 모습을 보며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참고 기다림의 가치는 끝이 아닌 시작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일 듯싶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