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강자 엔비디아, 미국 30대 대표 기업에
졸면 죽는 첨단 산업 경쟁, 변화에 기민한 대응을
몰락하는 ‘반도체 제국’ 인텔에 날개는 없었다. 3분기 역대 최대 손실을 기록하며 대규모 감원과 주요 사업 부문 매각 등에 나선 인텔이 오는 8일(현지시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쫓겨난다. 1999년 편입된 뒤 25년 만이다. 인텔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찬 건 반도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한 엔비디아다.
인텔의 다우지수 퇴출은 반도체 산업의 달라진 지형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나스닥 지수와 S&P500 지수와 함께 3대 지수로 꼽히는 다우지수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우량기업(블루칩) 주식 30개 종목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지수다. 30개 종목 중 특정 종목이 더 이상 해당 산업을 대표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주식을 빼고, 해당 산업을 대표할 새로운 기업의 주식으로 대체한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대표주자는 이제 인텔이 아닌 엔비디아란 의미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다.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다. 주가는 거침없이 질주 중이다. 지난해 약 240% 오른 데 이어 올해에도 170% 이상 상승했다. 시가총액은 3조321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에 인텔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올해에만 주가가 54%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99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3분기 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 상황도 최악이다. 지난 8월에는 1만6500명의 직원을 감축하겠다는 고강도 구조조정 방침도 밝혔다.
인텔의 몰락은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을 등한시하면 기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용컴퓨터(PC)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독보적 1위였던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 전략으로 2010년대 중반까지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모바일과 AI라는 반도체 산업의 판도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 애플의 요청에도 스마트폰 칩 생산을 포기했고, 2005년 엔비디아 인수와 2017~2018년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투자 기회도 모두 걷어찼다. PC CPU 시장에서도 경쟁사인 AMD에 밀렸다. ‘반도체 제국’ 재건을 위해 3년 전 진출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문의 성과도 미미하다.
이런 추락의 흐름을 관통하는 건 혁신의 부재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산업과 시장의 패러다임은 순식간에 변한다. 수익성 개선에 목을 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하면 기술 발전과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초격차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잠시 한눈을 팔고 긴장을 늦추면 ‘한국판 인텔’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