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베시 동부에 자리 잡은 고층맨션 숲. 앞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산을 끼고 들어서 천혜의 위치를 자랑한다.
고베의 신도심인 이곳 ‘HAT(Happy Active Town)고베’는 1995년 1월 17일 한신(阪神) 대지진 발생 이듬해 재개발을 시작한 ‘부흥의 상징’이다. 여의도 약 3분의 1 크기의 매립지 120ha(1.2㎢)에 주택과 대형 쇼핑센터·영화관·미술관·공원 등이 들어섰다.
전선을 지하에 매설해 내진성을 높이고, 재해 시 피난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광장을 곳곳에 설치했다. 아름다운 거리와 교통 접근성 덕에 최근 이곳엔 어린 자녀를 둔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고베시 인구통계에 따르면 HAT고베가 위치한 주오구의 인구는 1995년 10만명에서 2023년 15만명으로 증가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는 드물게 2021년 초등학교가 신설되기도 했다.
한신대지진은 종전 후 일본 대도시에서 발생한 첫 강진이었다. 일본 역대 최강의 진도 7을 기록, 고속도로와 도심 고가도로가 붕괴했다. 6434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80~90%는 무너진 주택에서 발생했는데, 붕괴한 건물 대부분이 오래된 목조 주택이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건축기준법을 개정, 건물 내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방재 계획 전문가인 무로사키 요시테루(室崎益輝) 고베대 명예교수는 “한신대지진은 일본 국민에게 모든 건물에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참사였다”고 말했다.
한편, 고베시 남서부 코리아타운이 위치한 나가타구의 ‘신(新)나가타역’ 주변 상가는 저녁 시간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지진 체험담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80대 활동가 A씨는 “같은 시내라도 복구 작업에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에 버금갈 만큼 재일교포가 많은 이곳은 목조 주택과 상가가 밀집해 지진 당시 화재 피해가 컸다. 이후 시 주도로 재개발이 추진돼 10동 이상의 주상복합 건물이 건설됐는데, 관리비 상승 등으로 공실이 늘었다. 지난해 10월 완공 이후 적자 규모만 326억 엔(약 3000억원)에 달했다.
무로사키 교수는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행정의 일방적인 복구사업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기존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도시 재건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인프라 복구뿐 아니라, 지역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도시설계가 본질”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마음치유도 한신대지진의 과제였다. HAT 지역에 세워진 ‘사람과 방재 미래 센터’에는 고베대 학생들이 1998년부터 10여년간 총 363명의 유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6세 손녀 사쿠라코(桜子)양을 잃은 할아버지 가가 유키오(加賀幸夫)씨는 손녀를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도 “손녀에게 자랑할 수 있는 마을 재건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무로사키 교수도 자책하는 사람 중 하나다. 지진 발생 전 고베시 방재 계획을 수립했던 그는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의 요청에 따라 ‘진도 5’로 재난예측을 수정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다. 기록을 남기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내 책임이자 속죄”라고 말했다.
1995년은 ‘자원봉사 원년’으로도 불린다. 당시 많은 젊은이가 오사카에서 고베까지 걸어왔는데, 한 해에만 137만 명이 고베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같은 해 재해대책기본법이 개정돼 지방자치단체 등이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월 발생한 노토(能登)반도 지진에선 붕괴한 건물에서 압사한 피해 규모가 한신대지진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재난에 대비한 사회시스템과 봉사 네트워크가 이뤄낸 진전으로 평가된다.
올해도 한신대지진이 발생한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고베시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올해 추모식에선 등불로 ‘함께하다(よりそう)’ 라는 글자를 만들 예정이다. 지금도 지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과 노토반도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함께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