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11일을 돌아본다. 망설이는 마음을 뒤로하고 오후 8시경 어두운 정장 차림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을 위해 홀로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다가 폭우로 밀려들어온 빗물에 방이 순식간에 잠겨 도시 한복판에서 황망하게 사망한 가족의 장례식이었다. 세 명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던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조화와 노조 조끼를 입은 조문객들이 이 죽음의 맥락을 말해주고 있었다. 봉투에 ‘시민’이라고 적고 헌화한 후 돌아왔다.
이 참사 이후 늘 그렇듯 대한민국은 잠시 떠들썩했다. 저 취약한 공간에는 면세점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중년의 가장, 그의 발달장애인 언니, 그의 노모, 그의 어린 딸이 살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늘 희생자의 눈물로만 열 수 있기라도 하는 듯 유난히 홍수 참사가 많았던 그해 여름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정치권의 언어가 난무했다.
현실은 달랐다. 2022년 여름 참사 당시 서울시 반지하 가구 수는 20만 정도로 추정됐다. 다소 오차는 있지만 가구 수로 보면 당시 성북구(19만8000)나 강동구(20만2000) 크기였다. 반지하를 없앤다는 것은 성북구나 강동구 규모의 가구를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분당(19만5000)만 한 신도시를 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목소리는 곧 잦아들었고, 서울시의 반지하주택 매입은 지지부진하다.
무엇이 얼마나 의미 있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23년은 어떤가. 7월15일 호우에 미호강이 범람하며 강물이 오송지하차도에 순식간에 흘러들어 14명이 숨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호우, 인근 제방 공사 부실, 재난 경보 체계의 허점과 담당 부서 간 소통 미흡 등 늘 거론되는 참사의 원인들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것들이 어느 날 함께 발생했을 때 빗줄기는 참사로 이어졌다.
폭염일수가 역대치를 갈아치운 2024년 여름의 모습은 또 달랐다. 기상청의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는 전년 대비 온열질환자가 31.4%(3704명) 폭증했고,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전년 대비 3배 규모인 1430억원의 양식 생물 폐사 피해가 발생했다. 날씨를 예측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많은 기후 전문가들은 올해 역시 다르지 않거나 더 나빠질 것이라 보고 있다. 이 예측이 틀리길 바라면서도 우리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이제 저마다 앞으로 5년간 이 나라를 맡겨달라는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들여다본다. 기후위기를 지적한 공약은 숨은그림찾기처럼 찾아야 한다. 어떤 후보들의 공약에는 아예 없고, 어떤 후보의 공약에는 맨 마지막에 놓여 있고, 어떤 후보는 재난 대응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나마 한 후보만이 다섯 번째에 놓았다.
하지만 새 정부에는 당면한 의무가 있다. 새 정부는 출범 100일 즈음인 9월까지 파리협정에 따라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확정해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폭염이 지속되던 작년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면서 개정 시한을 2026년 2월28일까지 부여했다. 이 역시 새 정부의 숙제가 됐다.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 무엇으로 첫 100일을 보낼지 알 수 없지만 기후는 산업과 고용, 에너지, 외교정책과 연계되는 어렵고 미룰 수 없는 과업이다.
중요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늘 그렇듯 정부조직 개편도 해야 하고, 탄핵의 여파도 수습해야 하고, 미국과 협상도 진행해야 하는 등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 100일 동안 비는 쏟아붓기 시작할 것이고, 폭염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폐부터 파고들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 수요는 또다시 정점을 찍는 와중에 온열환자들은 또 대폭 증가할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현장 노동자들은 실내가 아니라 그늘에서 햇살만 겨우 피한 채 쉬어야 할지도 모른다. 동식물들은 폐사하고, 노인들은 고통받을 것이다. 새로운 예측이 아니다. 반복되었기에 빤히 예상되는 사태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5개월여,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정치적 사태를 경험했다. 기상청이나 질병관리청 등이 여름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지만 시민사회나 공직사회나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다. 온 사회가 대선에 빠져든 지금, 거대한 불평등의 여름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