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혁명 최전선을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년 만의 CES 기조연설 무대에서 꺼낸 화두는 로봇이었다. 무형화한 생성형 AI를 손에 잡히는 물리적 AI로 확장해내겠다는 야망이다. 엔비디아가 선제적으로 로봇공학의 판을 깔아 생성형 AI 시대 장악의 열쇠가 된 쿠다(CUDA)의 성공을 물리적 AI 시대에서도 재연하겠다는 것이다.
6일(현지 시간) CES 2025 기조연설에서 황 CEO가 공개한 코스모스는 실제 세계의 물리 법칙과 행동을 구현하는 ‘가상세계 플랫폼’이다. 기존 엔비디아 디지털트윈 플랫폼 옴니버스가 건물 등 정적인 구조체를 가상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코스모스는 움직이는 세계의 ‘행동’을 생성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코스모스 제작은 AI 로봇 교육의 난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챗GPT 등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해 모방한다. 스테이블디퓨전 등 그림 생성 모델은 그림을, 소라 등 영상 AI는 영상을 학습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행동을 모방해서는 실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없다. 사람의 움직임만 학습해서는 우리가 겪는 실제 세계의 물리법칙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분명한 탓이다.
황 CEO는 “로봇 기술은 바로 코앞에 있지만 로봇에 AI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의 물리적 법칙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로봇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세계 기반 모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코스모스는 실제와 같은 가상세계 속에서 물리적 행동을 생성한다. 로봇이 학습할 수 있는 가상 환경을 무한히 만들어내는 셈이다. 황 CEO는 “로봇 AI 모델 훈련을 위해 미래에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합성 데이터 시나리오를 다량 생성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스모스를 활용하면 로봇 학습에 필요한 시간과 자본이 모두 크게 줄어든다”고 전망했다. 코스모스는 2000만 시간 분량의 영상을 14일 만에 처리해 중앙처리장치(CPU)만 사용했을 때 필요한 작업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코스모스는 오픈소스로 대중에게 무료 개방된다. 이는 지금의 엔비디아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개발 플랫폼 CUDA의 대성공을 로봇공학 생태계에서도 재연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엔비디아는 ‘AI 암흑기’로 불리던 2006년 그래픽처리장치(GPU) 전용 개발 플랫폼 CUDA를 출시했다. 이후 GPU가 AI 개발에 쓰이기 시작하며 CUDA가 AI 표준 생태계로 자리 잡았고 이는 경쟁자에 단단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 CEO는 로봇을 비롯한 물리 세계에 AI를 구현하는 데 전사적인 역량을 쏟고 있다. 뜬구름 같던 무형의 생성형 AI를 손에 잡히는 물리적 AI로 실체화해 일상을 바꾸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클라우드에서만 가동되던 AI를 가정과 사무실로 끌어오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AI가 공기처럼 일상에 녹아드는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네트워크 접속 없이도 작동 가능한 온디바이스(엣지) AI 구현이 필수다.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초대형 AI 개발사들이 속속 내놓고 있는 개인화 AI 비서(에이전트) 또한 끊임 없는 작동을 위해서는 온디바이스 연산 보조가 요구된다. 이는 네트워크 연결이 끊어지더라도 작동이 보장돼야 하는 자율주행차·드론 등 모빌리티 영역에서도 필수 사항이다.
황 CEO는 초고가인 AI 가속기를 구매할 수 없는 가정과 소형 스타트업·연구소를 위한 ‘미니 슈퍼컴’ 디짓(Digits)을 공개했다. 블랙웰을 손바닥만한 미니 컴퓨터로 소형화한 제품으로 ARM 기반의 그레이스 중앙처리장치(CPU)가 탑재돼 디짓 하나만으로 완성된 컴퓨터라 할 만하다. 게이밍 GPU인 RTX 5000 시리즈도 소형 스튜디오 등에서 AI 영상 콘텐츠 제작 등에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