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시진핑이 붉은광장에 함께 선다면

2025-04-30

2024년 5월 9일. 79주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은 5월인데도 때아닌 눈발이 날렸다. 기온이 0도까지 떨어져 최근 25년 만에 가장 추운 날이었다. 이날 열병식의 선봉에 선 T-34 전차 1대는 러시아 측이 2차 대전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전차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요란한 엔진 소리만큼이나 행사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최신 전차가 열병식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 만에 등장한 수호이 전투기가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3색 연기를 뿌려 그나마 행사 분위기를 북돋웠다.

시진핑, 전승절에 방러할 듯

미국의 ‘역키신저 전략’ 실패

북한군, 열병식 참가 가능성

약 7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잊은 오만한 서방 강대국들이 전 세계를 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우리 전략군은 언제나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핵 무력을 과시했지만, 허장성세로 보였다.

푸틴 대통령의 뒤편 VIP석에 자리 잡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몇몇 옛소련권 국가 정상과 쿠바, 라오스, 기니비사우(1984년 한국과 수교한 서아프리카 연안 국가) 정상은 추운 날씨 탓에 옷매무새를 챙기느라 바빴다. 우크라이나 정권은 신나치 정권이라는 푸틴의 주장만큼이나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올해 전승절 풍경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은 열병식을 앞두고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기습으로 점령당한 서부 쿠르스크주의 완전 회복을 선언했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북한군 파병 사실까지 공식 확인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엇보다 참석이 예상되는 정상들의 면면이 확 달라졌다. 대통령실 격인 크렘린궁은 전승절을 축하하기 위해 20여명 이상의 국가 및 정부 정상이 모스크바에 올 것이라고 밝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또 럼(To Lam)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뿐 아니라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등 유럽의 친러 지도자들도 참석하거나 참석을 저울질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당연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쏠릴 것이다. 시 주석의 참석은 현재 공식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다.

1년 만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볼 수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러 행보는 이제 푸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체포 대상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전 세계 지도자들을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정상으로 바꿔 놓았다.

5월 9일 붉은광장에 푸틴과 시진핑이 나란히 선다면 가장 충격을 받을 사람 역시 트럼프일 것이다.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고 했던 ‘역(逆)키신저 전략’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모스크바는 임기 4년의 미국 대통령(그것도 말 바꾸기가 빈번한)이 아니라, 중국을 10년 이상 통치할 수 있는 시 주석을 선택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분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 있다. 어쩌면 1979~89년 10년 넘는 소모전으로 소련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결국 체제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후폭풍을 우크라이나에서 기대했던 조 바이든 정부와 유럽의 선택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80주년 러시아 전승절에는 깜짝 이벤트가 있을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석이다. 지난해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김정은을 초청했고, 김정은이 전승절에 맞춰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만약 실현된다면 바이든 정부 당시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북·중·러 삼각 협력 구도의 완성을 의미한다. 물론 이번은 아닐 수 있다. 북·러 밀착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점, 푸틴과 시진핑이 현시점에서 굳이 미국을 추가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점, 김 위원장이 다자 행사에 참여한 전례가 없다는 점 등이 근거다.

어쨌든 지난 28일 조선인민군 대표단은 평양에서 출발했다.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열병식의 달인’ 북한군이 김일성광장이 아니라 붉은광장을 누비는 생소한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푸틴은 지난 26일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전장에서 단련된 러·북 간 우정과 선린 관계, 협력의 강고한 유대가 계속 성장하고 확대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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