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고가 지난해 194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재무 불안정 상태에 직면했다. 누적된 손실과 자본잠식 우려로 인해 배달대행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퀵커머스 시장 성장과 반대로 배달대행 업체들의 잇단 경영위기에, 배달대행 생태계 혁신과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19일 바로고 2024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바로고는 지난해 약 193억8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도(-243억원)보다는 적자 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대규모 손실이다. 같은 기간 자본총계는 22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419억원에서 당기순손실만큼 줄어든 수치다.
배달대행 빅3에 들어가는 바로고 마저 재무 상황이 악화되며 배달 대행 생존성에 대한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만나플러스가 디폴트를 선언한데 이어 올해 초 래티브 또한 배달비 출금이 이뤄지지 않으며 현재 홈페이지를 폐쇄한 상태다.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 자체 배달 증가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배달 대행 플랫폼의 주 수익원은 배달 건당 라이더가 주문 중개 솔루션을 이용하며 지불하는 80원 가량의 수수료다. 그러나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자체 배달 비중이 늘면서 배달 대행 플랫폼이 담당하던 주문 건수가 대폭 줄었다.
일각에서는 배달대행 플랫폼의 혁신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시장이 성장하며 이들 기업은 벤처캐피탈(VC)로부터 막대한 투자금을 받았다. 혁신 기술 도입이나 신규 사업 시도 보다는 트렌드성 사업을 진행하며 경쟁에 몰렸다. 바로고의 경우 공유주방, 포스(POS) 사업 등에 투자했다.
라이더를 영입하기 위한 대여금 정책에 투자금을 소진했던 점 또한 패인으로 꼽혔다. 팬데믹이 끝나며 배달 수요가 줄자 대여금을 갚지 못하는 배달 지사가 생겼으나 일부 배대사는 치킨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식당으로부터 받은 배달비까지 대여금으로 사용했다. 자금 소진으로 라이더에 지급할 배달료가 바닥났으나 기업은 이를 은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시장 내 신뢰도는 하락했고 배달 대행 업권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했다는 분석이다.
한 배달대행 업계 관계자는 “수천억원의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혁신을 통해 시장을 주도한 기업이 없었고,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수요와 시장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래티브(구 스파이더크래프트)와 만나플러스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라이더 미정산 사태를 일으켰으나 각각 서버 모듈 교체 작업과 전자금융거래법 사전 정비라는 거짓 변명을 하다가 시장 전반의 신뢰도를 하락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편, 퀵커머스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배달대행 생태계를 다시금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쿠팡이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가운데, 네이버도 최근 '지금배달' 서비스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컬리, 배민, GS리테일, 올리브영, 다이소 등 다양한 유통 및 플랫폼 기업들도 퀵커머스 기반의 빠른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시장 상황 속 배달대행 플랫폼이 무너질 경우 퀵커머스 인프라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쿠팡, 컬리, 배민처럼 자체 물류망을 갖춘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통사는 여전히 배달대행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달 대행 플랫폼을 활용하면 자체 물류망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전국 단위 배송망을 빠르게 확장하고, 고정 인건비 부담 없이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특히 도심 외곽이나 비수도권에서는 퀵커머스의 핵심인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배달대행 플랫폼의 라이더가 필수”라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