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은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구축 기회

2025-12-16

한·미 관세협상이 어렵사리 타결된 지 한 달 보름이 훌쩍 지났다. 자유무역협정(FTA)을 기반으로 작동했던 장벽 없는 교역 환경은 아니지만, 가장 큰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주요 대기업들의 대미 직접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이다.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경쟁자가 된 지금, 미국 시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제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은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정부는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미국에 진출해 안착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미, 한국 기업과 숙련 노동력 원해

자녀 등 가족 장기체류 지원 필요

글로벌 동포 커뮤니티 만들어야

필자는 지난 7월 한·미 제조업 동맹의 핵심인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를 직접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제조 기업들은 현지 채용 인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자동차·2차전지·반도체 기업들도 최대 고민은 우수 인력 확보였다. 현지 인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인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킬 숙련 노동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많이 들렸다. 숙련 인력이 필요한 곳은 대기업들의 제조 공장뿐만이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반의 수준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과 협업할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생산 시설에도 한국의 숙련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인 숙련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파견과 정착 문제는 한국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미국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할 분야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검토할 때가 됐다. 숙련 노동자가 단순히 몇 개월 또는 1~2년 동안 나홀로 파견 가는 것이 아니라, 학령기 자녀를 둔 가장을 중심으로 적어도 10년 정도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어쩌면 그곳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미국의 정책 협조를 구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양질의 한국인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기대했다. 단순히 고용과 비자만으로 그들이 안착할 수는 없다. 자녀들이 미국의 공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적어도 수천 명의 한국 노동자와 가족이 이번 기회에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거나 영주할 자격을 줘야 한다.

미국에 정착한 그들의 자녀들이 10~20년 후에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면, 한국인의 해외 이민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한국의 이민사는 빈곤했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만주와 연해주를 시작으로 20세기 들어 대한제국의 이민 정책에 따라 한민족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멕시코 용설란(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건너가 일했다. 1960년대에는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됐고, 월남전쟁 기간에는 베트남에도 파병됐다. 1970~80년대에는 중동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고, 농업 이민은 남미에 정착했다. 이주 국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을 맨몸으로 도맡으며 피땀 흘려 개척한 역사다.

이제는 달라졌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졌고, 우수한 한국인을 원하는 주체도 달라졌다. 최강대국인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한국인을 원하고 있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제조업 스승’으로 한국인을 원하고 있다. ‘글로벌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갈 기회가 왔다.

유대인은 중동의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땅에 사는 사람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전 세계 가장 중요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이스라엘을 조국으로 인식하고 생활하는 사람 모두를 유대인으로 여긴다.

코리안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5200만 명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한국인이란 자부심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코리안이다. 이를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 줄 때다. 말로만 재외동포 존중이 아니라 국민의 개념을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재외동포로 실질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700만 명이 넘는 재외동포를 실질적인 국민으로 대우하고 대한민국이 그들의 조국이자 모국임을 자각하도록 해줘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코리안 커뮤니티’를 구축해 그들이 대한민국에 기여하고 조국이 그들을 지원하는 견고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환 삼프로TV 이사회 의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