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亞에 통화 절상 압박?… ‘제 2플라자 합의’ 공포 [심층기획-시험대 오른 '달러 패권']

2025-05-13

美, 강달러가 무역 적자의 원인 판단

대만과 협상 중 대만달러 10% 폭등

환율 관찰대상국 韓, 다음 타깃 우려

미국의 상호관세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촉발한 ‘제2 플라자 합의’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 탈피를 위해 협상 대상국의 통화 절상을 압박하고 있다는 의심이 현실화하는 모양새여서다.

미국과 대만이 관세협상 중이던 지난 2일과 5일 이틀(영업일 기준) 사이 미국 달러 대비 대만달러가 10% 가까이 폭등했다. 이는 보통 연간 변동폭 수준이자 1988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역외시장에서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 홍콩 달러 등 다른 아시아 통화도 덩달아 급등하며 외환시장 변동성이 극도로 확대됐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1370원까지 떨어졌는데, 지난달 초 1487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새 100원 이상 내린 셈이다.

시장에선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절상을 요구했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가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스티븐 미란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기축통화인 달러의 구조적 강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관세만으로는 무역적자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환율 조정을 통해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가 나온 후 미국이 플라자 합의 때처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저택인 마러라고에 각국 대표를 불러모아 관세와 안보 우산을 무기로 달러화 약세를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했다.

플라자 합의 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235엔에서 1년 만에 120엔대까지 떨어졌다. 엔고(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 수출은 타격을 입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펼치다 부동산·주식 버블이 발생하며 장기 침체에 빠졌다.

대만 정부는 부인했지만 시장에선 미국의 압박에 대만 정부가 대만달러의 절상을 용인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문제는 대만 다음 타깃이 한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556억달러로, 미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40년 전 플라자 합의와 같은 형태의 마러라고 회의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미국이 환율 절상 압력을 넣었는지 여부는 확인이 안 된다”며 “다만, 미국은 협상에서 무역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하고 이는 결국 상대국 통화가 절상되고 달러를 약세로 전환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이를 기대하고 먼저 움직인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 4월 미 국채 금리가 엄청 뛰었는데 중국이 미 국채를 던져서가 아니라 헤지펀드들이 그렇게 될까봐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환율 변동은 무역협정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미리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석병훈 교수(경제학)는 “달러 약세를 만들려면 대규모 개방경제 국가가 움직여야 하는데 40년 전에는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5개국(G5)이 움직였지만, 지금은 대규모 개방경제 중 하나인 중국이 미국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엔 희토류라는 무기가 있고, 일본과 유럽연합도 냉전시대 때처럼 미국에 무역과 안보를 의존하지 않는다”며 “의존도가 높은 우리와 대만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부연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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