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시선] ‘80년 역사’ 대백의 변화 시도 성공하길

2024-10-30

땀을 흠뻑 흘린 뒤에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한 잔, 두 잔 더 마셔 갈증이 사라지고 배가 불러오면 만족은 처음 같지 않고 점차 줄어든다. 이처럼 일정한 기간 동안 소비되는 재화의 수량이 증가할수록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한계효용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소비자들이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백화점·쇼핑몰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체류형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쇼핑부터 식음료, 여가, 문화예술체험까지 누릴 콘텐츠가 많아진 소비자 입장에선 긍정적인 변화지만, 그만큼 유통업체들은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다. 백화점·쇼핑몰이 진화한 만큼 소비자의 눈높이와 기대치도 이전보다 한껏 높아졌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규모와 좋은 입지 조건으로 지역 1등 백화점 자리를 꿰찬 대구신세계백화점도 어느덧 개점 10년차가 돼간다. 지난 2016년 개점 이후 해외 유명 브랜드를 앞세워 줄곧 승승장구해왔음에도, 럭셔리 콘셉트에 안주하지 않고 시류를 잘 읽어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 트렌드와 고객 니즈에 맞춰 유명 팝업을 잇따라 유치하고 대대적인 식품관 리뉴얼을 단행하는 등 크고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22년 대구점을 ‘더현대대구’로 리뉴얼해 성과를 냈다. 문화·예술 관련 시설 면적을 기존보다 4배 확대하고 MZ세대 전문관, 팝업스토어 공간을 마련하는 등 환골탈태해 1년 만에 고객이 30% 늘었다. 3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없는 백화점임에도, 대구신세계와는 다른 전략으로 제 갈길을 찾았다.

롯데백화점 대구점도 인근지역 신규 아파트 입주 등에 맞춰 매장 구성에 변화를 주며 새 활로를 찾고 있다. 올 상반기 리빙전문관을 대대적으로 새단장하고, 동시간대 1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키즈파크를 조성해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했다. 300여 명이 동시에 이용 가능한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70여개의 국내·외 브랜드를 한 데 모은 멀티브랜드 큐레이션 스토어 ‘코프트(COFT)’를 잇따라 선보인 데 이어 조만간 백화점 9층에 PT 전문 피트니스 클럽도 문을 연다.

대형 백화점들이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자구책을 마련하는 사이, 국내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은 부동산 자산 공개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매물로 나온 대백 본점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맞물려 3년간 주인을 못 찾고 있는 가운데, 이번 부동산 자산 공개매각이 대백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될 것인지 관심이다.

동성로 본점이 2021년 문을 닫은 뒤 사실상의 대백 본점 역할을 하는 프라자점(대백프라자)은 빅3 백화점의 공세에 밀려 고전 중이다. 대백은 유휴자산 매각으로 부채를 털고 대백프라자 영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인데, 이마저도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백화점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노후한 시설 개선과 MD 개편이 시급하고, 신규 브랜드 유치나 프로모션 마련 측면에서도 빅3 백화점보다 열세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자산 매각 이 외엔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대백이 내년 2월 대백프라자 10층에 실내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오픈하기로 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다. 대백의 전통적인 충성고객인 시니어층을 타겟팅한 전략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파크골프 취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 대구·경북인 점을 고려한 지역 밀착 서비스이기도 하다.

백화점 내에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접목해 효과를 본 좋은 선례도 있다. 지난 2021년 롯데백화점 대구점 6층에 실내 골프연습장 ‘GDR 골프 아카데미’가 입점할 때만 해도 업계 안팎의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엔 고객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마케팅은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랜만에 들려온 대백의 새로운 시도가 차별화된 문화체험시설을 꾸준히 늘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고객들의 효용(만족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트렌드 변화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경쟁사가 생각지 못한 또다른 경험과 기회를 제공해야 유통업의 본질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공간을 넘어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80년 역사 향토백화점 대백의 반전을 만들 승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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