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노래한 다정한 말들...박준 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 [BOOK]

2025-04-18

마중도 배웅도 없이

박준 지음

창비

문학에 대한 회의가 짙은 시대에도 시집이 수십만 권 팔리는 시인이 있다. 그중에도 박준은 특별하다. 기형도·류시화·최승자처럼 시집으로 50쇄를 넘긴 쟁쟁한 시인들 사이에서, 2000년대 이후 데뷔한 젊은 시인은 그가 유일하기 때문. 그는 신동엽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두루 받았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로 독자의 외연을 넓혀온 박준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새 시집의 제목은 『마중도 배웅도 없이』. 마중도 배웅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상실의 정서가 곳곳에 배어 있다.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남긴 당부를 산문처럼 풀어낸 시 ‘블랙리스트’) ,

'일신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버스에 올라타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한 남자를 그린 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시집은 상실의 시간을 떠나보내는 힘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오월에는 잎이 오를 거라 했습니다 흰 것일지 푸른 것일지 알 수는 없지만 팔월이면 꽃도 필 거라 했습니다’는 상실 그 이후의 시간을 노래한 시다. 시인에 따르면 “멀리 있는 이가 여전히 멀리 있지만 그래도 있기는 있는 것처럼” 여름 오지만 싹이 나지 않는 화분일지라도 “빛과 그늘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그 자리에 있다. 소란스럽지 않은 위로의 언어가 미지근한 듯 뜨듯하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이라는 이제니 시인의 추천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건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 우리에게, 조용히 곁에 머물며 슬픔을 감당할 용기를 건네는 시인의 언어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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