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대학평가 - 공학부문 지표별 우수대학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UNIST(울산과학기술원)의 특수실험동은 요즘 전 세계 원자력공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체코에 수출하기로 한 한국형 원전(APR1000)을 8분의 1 크기로 축소해 만든 세계 유일의 실험장치 ‘패트리엇’을 보기 위해서다. 최근에 미국 조지아공대, 미시간공대와 이탈리아 밀라노 공대 교수들이 다녀갔고 내년 1월에는 MIT 연구진들의 방문 일정도 잡혀 있다.
이 장비는 탄소강으로 만들었는데 실제 원자로와 동일한 조건의 고온·고압 상태를 유지하면서 각종 열전달 현상과 냉각 성능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만난 방인철 UN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원자력공학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도 최정상급”이라며 원자력공학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AI 혁명 뒷받침할 원자력, 반도체… KAIST와 UNIST ‘선두’
2024 중앙일보 이공계대학평가 공학 부문에서는 산업 변화에 발맞춰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은 대학들이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AI(인공지능) 산업을 뒷받침할 반도체와 원자력 기술에서 앞서나간 대학들이 대표적이다.
UNIST는 ‘과학기술 교수당 특허 등록 실적’ 지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순위 상승을 이끌었다. UNIST는 최근 3년간 총 1015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매년 교수 1인당 3.5개의 실적을 낸 셈이다.
특히 원자력공학과는 질적인 성과에서도 돋보였다. 원자력공학과 방 교수는 SMR(소형모듈원자로)에 적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제어봉’ 기술을 고안해 지난 2015년에 미국 원자력학회 학술대회에서 최고 논문상을 받았고, 지난해에 특허 등록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는 “(해외 기업과) 특허 분쟁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차세대 원전으로 떠오른 SMR 분야에서 원천 기술의 특허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분야에선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부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KAIST는 ‘과학기술 교수당 산학협력수익’ 지표에서 2위에 올랐다. 지난해 벌어들인 산학협력수익은 1140억 원이 넘는다. 이 중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정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혼자서 90억 원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유승협 전기·전자공학부 학부장은 “최고의 연구 역량을 보유한 교수진과 학생들이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보답하며 기업들과 신뢰관계를 쌓아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연구비 실적 최상위…나노공학 앞서가는 성균관대
미래 유망 기술을 선도적으로 확보하려는 대학들의 노력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균관대는 ‘교수당 외부 연구비’ 지표에서 4위에 올랐다. 전임교원이 18명뿐인 나노공학과가 총 440억 원의 연구비 끌어온 덕분이다. 단일 학과의 연구비 실적으로는 최상위권에 속한다.
머리카락 굵기 10만 분의 1 크기를 다루는 나노과학은 비교적 신생학문이지만 디스플레이, 반도체, 바이오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유필진 성균관대 기획조정처장은 “나노 크기의 물질에서 나타나는 양자 현상을 활용한 양자컴퓨팅 분야를 주력 연구주제로 선정해 차세대 첨단과학기술 연구에서 앞서가고 국내외 최고석학과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등 교내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대형사업 수주의 결과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국제표준’ 이끈 강원대
국제표준 실적에서는 강원대가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표준은 각종 설계 및 생산, 평가 과정에서 전 세계에 통용되는 일종의 ‘약속’이다. 국제표준으로 채택된다는 건 연구의 국제적 영향력과 실용성이 입증됐다는 걸 의미한다. 탁태오 강원대 기계의용·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는 자율주행차에 적용되는 차로 변경 시스템의 성능과 안전성을 측정하는 평가 기준을 개발해 국제표준화에 성공했다.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자동차 제작사는 자율주행차량을 개발하고 테스트할 때 탁 교수가 만든 국제표준을 참고할 수 있다. 탁 교수는 “자동차 산업은 현재 급격한 기술 혁신과 변화를 겪고 있는데 자율주행차는 테슬라에, 전기차는 중국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표준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평가팀=이후연·이가람·이아미 기자, 김가영·박현민·이대연 연구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