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82〉상식, HR 분야의 새 기준

2025-03-12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채용 비리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의 공정성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선관위는 지난 10여년간 간부들의 자녀를 비공개 채용하거나 면접 점수를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총 878건의 부정 채용을 저질러왔다고 한다. 내부 직원은 '선관위는 가족회사다'라는 말을 공식 석상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하며, 한 간부는 자신의 딸이 착하고 성실하기에 자격이 있다며 옹호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상식(common sense)'조차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선관위 내부에서 이러한 비리가 더 이상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조직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선관위 채용 비리는 단순한 법적 위반을 넘어, 조직 내부에서 어떻게 비윤리적 관행이 정당화되고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는 결국 리더들의 태도와 행동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조직의 기본 가치가 왜곡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비윤리적 문화가 단순히 국내 선관위 내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불법적 영장 청구, 불법적 조사 권한 남용, 위헌적 구속이 확인되었음에도 일부 비즈니스 리더들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탄핵 인용을 원하는 입장을 이유로 이를 정당한 정의 구현으로 포장했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목적을 위해 불법적 수단이 용인될 수 없음에도,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이 보인 이 같은 태도는 심각한 현상이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리더들이 결과만을 중시하며 과정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위험한 관행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리더들이 과연 기업과 조직을 이끌 자격이 있는가? 어쩌면 HR 업계는 이제 스펙과 경영 능력만으로 인재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리더십과 도덕적 판단력이야말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가속화되는 탈글로벌주의는 국내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사회적 상식에 기반한 리더십과 판단력을 요구하며, 앞으로의 인재 채용 시 이는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 중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해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며, 내수 중심 경영과 현지 적응 전략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약화되고 각국 정부의 산업 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점점 자국 시장과 정책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각국의 기업이 속한 사회의 상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커짐을 의미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은 미국과 중국의 AI 반도체 무역이 단절되어 공급망이 국가별로 재편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자국 중심의 AI 및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의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생산을 지역화하며, AI 연구 협력도 국가별, 블록별로 재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 신뢰와 상식에 기반한 리더십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구글과 MS는 경영진 선발 과정에서 '딜레마 기반 인터뷰'를 도입해, 지원자가 도덕적 갈등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평가한다. 또, 360도 다각적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리더가 조직 내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기업들도 윤리적 리더십을 강화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첫째, 채용 및 승진 평가에서 윤리적 리더십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조직 내 '레드 플래그 시스템'을 구축해 윤리적 문제가 감지될 경우 즉각적인 경고와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리더십 평가에서 윤리적 의사결정 역량을 공식적 평가 항목으로 추가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하고 산업이 발전하려면 결국 '신뢰'가 핵심이다. 실제로 Ethisphere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5년간 일반 시장 대비 14.4% 높은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HR 업계가 나서서 윤리적 리더십을 필터링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기업 문화는 더욱 퇴보할 수밖에 없다. 윤리와 상식이 바로 선 조직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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