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브리얼 렌즈 UC버클리대 교수
유권자 행동·정치 심리학 연구
저명한 정치학자로 활발한 활동
“美 의사당 난입사태 계기로
공화·민주 진영 심층 인터뷰
실제는 모두가 민주주의 원해
정당간 오해 해소 필요성 느껴”
“상대를 대범하게 포용할 때
서로에 대한 오해 풀 수 있어
美 대선 앞두고 트럼프 사면 제안
현실 정치에선 아직 어려워”
“비상계엄과 탄핵찬반 과열
극심한 여야대치 속 거리정치
충돌상황 극단으로 향할 땐
모두 패배자 된다는 것 알아야”
“한국과 미국의 정치 양극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이 더 심각할 수도 있겠다.”
게이브리얼 렌즈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 양극화 상황이 극심하다고 평가했다.

극심한 여야 대치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의 구속과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탄핵 찬성·반대 집회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을 렌즈 교수에게 물었다. 렌즈 교수는 정치 양극화 해소에 대해 “전쟁을 끝낸 두 나라가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 전쟁은 모든 사람을 패배자로 만든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렌즈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당 간 오해 해소 전략에 대해 설명해달라.
“미국의 많은 사람이 ‘반대 진영의 지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상대 진영이 먼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믿으면 자신들도 민주주의 절차를 무너뜨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전복의 딜레마(subversion dilemma)’ 이론이다. 다만 대다수는 민주주의가 지속하길 원하고, 민주주의의 규범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해 해소를 통해 상대 진영의 유권자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정치 양극화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의 유권자 역시도 ‘상대 진영이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서로를 극도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오해 해소’는 한가하거나 이상적으로 들린다.
“우리도 미국이 극도로 양극화돼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오해 해소 전략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달랐다. 우리가 내린 최선의 가정은 사람들은 사회가 원활하게 기능하길 원한다는 것이고, 상대 진영이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참가자들에게 ‘반대 진영의 유권자와 함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후보를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이 찬성한다는 응답을 했다. 물론 일부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한 민주당 지지자는 연구팀에 ‘공화당 유권자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원래 공화당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 설득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그 이유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웃음)”

―어느 한쪽이 먼저 나서 ‘전복의 딜레마’를 깨기 쉽지 않다.
“맞다. 대다수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계속 싸우려고 한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 잊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측이 상대를 강하게 공격하는 대신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다. ‘당신들이 우리를 믿지 않겠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협상할 의지도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잃는 것은 정말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선동에 나서고 있다.
“정치 지도자, 유권자, 시민사회 모두 받아들여야 할 사실 중 하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타협이 필요하다.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진영이 원하는 정책을 100%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유권자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지도자는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A라는 정책을 원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민주주의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일부 포기하고 협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시민사회, 언론의 역할은.
“시민사회, 이익단체 등도 상대 진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체 국민의 일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은 ‘반대 진영도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언론도 이미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반대 진영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언론은 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유튜버 등의 영향력이 강력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우려할 만하다. 지금은 불안정한 과도기라고 본다. 유권자들이 정치 유튜버들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다. 에스토니아의 한 정치인은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대해 오랫동안 가짜 뉴스를 퍼뜨려 왔지만,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그들의 선전을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정치 유튜버의 정보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이 될 것이고,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
―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트럼프 사면 발표’ 등을 제안했다.
“민주당 관계자에게 의견을 전달했지만 누구도 우리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정치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선거가 다가올 때만 잠시 정치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대범한 제스처(Grand Gesture)’를 보여줘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사면을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공화당 지지층은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치 양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인가.
“확실히 전 세계적 현상이다. 원인은 5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부상 △대규모 이민 증가 △경제적 불평등 심화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 △대중의 정치적 불신 증가가 결합하면서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을 잘 아는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한국에는 권위주의 시대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은 놀라운 나라이고, 국민도 대단하다.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복의 딜레마’ 이론… 게이브리얼 렌즈 UC버클리대 교수는
게이브리얼 렌즈 교수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버클리)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렌즈 교수는 민주주의와 정책 책임, 유권자 행동, 정치 심리학 등을 주로 연구해왔고, 관련 연구는 사이언스지를 포함해 다수의 주요 학술지에 게재됐다. 그는 2016년 미국정치학회 입법연구부문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스탠퍼드대학의 ‘민주주의 강화’ 프로젝트에서 최우수 연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치학회 등에서 다양한 토론회와 세미나를 주재하거나 참석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정치학자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NN 등 미국 주요 매체에 정치와 관련해 기고하고 있고, 저서로는 ‘리더를 따를 것인가? 유권자가 정치인의 성과와 정책에 반응하는 방법’(2012, 시카고대 출판부) 등이 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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