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측근인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가 간부들의 당규율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간부들의 비위는 김정은의 역점 사업인 '지방발전 20X10 정책' 핵심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실세를 징계해 내부 기강을 다잡고 사업 동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조용원의 잠행과 관련해 "간부들의 비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날 "조용원이 최근까지 공개활동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 신상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원은 지난달 1일 개풍구역 지방공업공장과 종합봉사소 건설 착공식 보도 이후 50일 넘게 북한 관영 매체에서 식별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조용원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며 "그런데 두 달 가까이 공개 활동이 없다는 건 (병환 같은) 개인적인 신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조용원이 공식적으로 경질되기보다는 근신이나 혁명화 교육 정도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정은은 2015년 11월에도 당시 최고 실세로 분류된 최용해 당 비서에게 혁명화 교육에 해당하는 징계를 내린 뒤 2개월 만에 근로단체 담당 당 비서로 복귀시켰다.
조용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시찰 담당 부부장에 임명됐다. 2016년부터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거의 모두 동행하면서 특별한 부침 없이 간부 인사 관리와 당 규율을 총괄하는 조직지도부장(2022년 6월 제8기 5차 노동당 전원회의)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용원을 두고 '김정은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조용원은 권력의 핵심에 오른 이후에도 처세에 능했다. 김정은이 2023년 8월 태풍 카눈의 피해를 입은 강원도 안변군 소재 오계·월랑농장의 침수 피해현장을 찾았을 당시 농작물 작황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자 맨발로 논에 뛰어든 장면은 그의 처세술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랬던 그가 공개 석상에서 사라진 건 그만큼 중대한 사안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 1월 소집한 노동당 비서국 확대회의를 주목했다. 회의에선 음주 접대를 받은 남포시 온천군 당 간부 40여 명과 주민의 이익과 재산을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자강도 우시군 농업감찰기관 간부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 김정은은 해당 기관까지 해산하는 강경한 조치도 취했다. 당 조직과 규율을 총괄하는 조용원이 이와 관련해 지휘·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용해가 실세로 떠올랐던 2015년 당시에도 군부 실세인 황병서나 보위부 김원홍 같은 경쟁자들의 견제가 있었다"며 "이런 내부 견제와 함께 소관하는 간부들의 비위까지 불거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용원에 대한 본보기식 징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비위가 발생한 지역이 지난해 김정은의 역점사업인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공장을 건설한 20개 군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김정은은 핵심 권력기관인 당 조직지도부와 내각을 앞세워 지방경제 발전사업을 책임질 비상설 중앙추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조용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북한 당국이 관영 매체를 통해 '1호 사업'인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과 달리 실제 사업 성과는 미미한 가운데 간부들의 비위까지 발생하자 김정은이 최측근 징계라는 '충격 요법'을 내놨을 것이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책임 간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결과까지 책임지게 하는 전형적인 김정은식 '위임통치' 방식"이라며 "내년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된 성과가 급한 김정은 입장에선 극약 처방이 필요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이 역점 사업으로 띄우는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들어선 공장들이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당국자는 "위성 분석 결과 상당수 공장의 가동 징후가 식별됐지만, 본격적인 가동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열 적외선 영상 열 감지, 주간 영상 분석을 통한 공장 주변 차량·인원 출입 여부를 판단의 근거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