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로운 중동의 역사적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연단에 올라 이같이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인 생존 인질 20명 전원을 석방했고,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풀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어둠과 포로 생활 속에서 2년이라는 끔찍한 시간을 보낸 20명의 용감한 인질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황금기이자 중동의 황금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공포와 죽음의 시대가 끝나고 믿음과 희망, 신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휴전 협정 체결에 큰 역할을 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뛰어난 용기와 애국심을 지닌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종전을 재차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건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엔 “맞다”고 답했다.
이번 연설은 2008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이후 약 17년 만에 이뤄진 미국 대통령의 크네세트 연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날, 새로운 시작”이라는 서명을 남기며 방문을 기념했다.

본회의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국회의장과 야당 지도자들까지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일부 청중은 ‘트럼프, 평화의 대통령(Trump, President of Peace)’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붉은 모자를 쓰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 타임스오브이스라엘 기자가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회의 연설 전 인질 가족들을 만났는데, 백악관 측은 “가족들이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일찍이 이스라엘 전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으로 들썩였다.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에는 네타냐후 총리 부부와 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 부부가 직접 마중 나와 트럼프 대통령을 환대했다. 텔아비브의 해변가 모래사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루엣과 함께 ‘감사합니다(Thank you)’ ‘홈(HOME)’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착륙 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현지인들이 준비한 헌사였다. 한때 억류된 인질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날짜를 표시하던 텔아비브 ‘인질 광장’ 전광판에는 이날 “그들이 집으로 온다(They’re coming home)”라는 문구가 새겨졌고, 광장에는 6만5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환호했다. 인근 거리에는 ‘노벨 대통령 트럼프(Nobel President Trump)’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예루살렘 시내 곳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모형 노벨 메달과 함께 “당신은 우리의 수상자(You are our laureate)”라는 문장이 붙은 포스터가 포착됐다. 노벨평화상을 간절히 원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서방 언론들은 “지친 이스라엘인들이 트럼프를 구세주로 맞이했다”(영국 가디언)고 전했다. 아미르 오하나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식 연설을 요청하는 서한에서 “이스라엘 국민은 당신을 현대 역사상 유대민족의 가장 위대한 친구이자 동맹으로 여긴다”고 찬사를 바쳤기도 했다.

이날 모든 이스라엘 일정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로 이동해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가자 평화 정상회의’를 공동 주재한다. 이 회의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도 참석한다.
다만 중동에 항구적 평화가 찾아올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인질 송환을 포함한 트럼프 중재안의 1단계는 완료됐지만, 하마스 무장해제와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 팔레스타인 과도정부 수립 등을 담은 2단계 절차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하마스 무장해제와 이스라엘 철수를 보증할 국제안정화군(ISF)의 구체적 구성과 규모, 병력 파견국이 모두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평화위원회와 그 산하의 가자지구 임시관리위원회 역시 실체가 불명확한 상태다. FT는 전직 미 외교관을 인용해 “합의 이행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무장해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군사 작전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며 “트럼프의 선언이 실질적 평화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