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대 대선마다 되풀이된 노동기본권 공약···정치는 더디다

2025-04-30

2012년 18대 대선부터 2022년 20대 대선까지 노동 공약을 분석해보니 ‘노동 기본권 확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에 정치가 사실상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비임금 노동자는 계속 증가해 2023년 860만명을 넘어섰다. 기술 발전으로 기존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노동의 형태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정치가 그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노동시장 불평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경향신문이 18~20대 대선의 노동 공약을 분석한 결과, 제도 밖 노동자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를 정치권은 늘 후순위로 미뤄둔 것으로 확인된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가 노동기본권 보장 및 사각지대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며 노동기본권 보장을 다시 공약했지만 상당수가 정책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2022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돼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진 것이 성과지만 대상은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 18개 직종에 불과했다.

최근 노동의 위기 양상은 더 복합적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존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노동의 형태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미적용, 비정규직 등 전통적인 노동 기본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 초단기 노동 등 새로운 노동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문제를 풀지 않으면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세종호텔, 한화오션 조선소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농성장을 찾는 대선 후보들이 없다는 부분이 정치가 노동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2012년 대선에는 문재인 후보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안철수 후보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농성장을 찾았고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 동상에 헌화했다”며 “우리 사회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는 대선 후보들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가는 제도 밖 노동자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는 정치를 통해 현실화되지 못한 채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만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노동안전 장치’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정책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18~20대 주요정당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을 분석한 결과 2012년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노동기본권 보장 및 사각지대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상당수는 정책으로 반영되지 못한 채 2022년 20대 대선까지 민주당 계열과 진보 정당의 공약으로 남았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정책공약집에서 “90%에 가까운 노동자가 사실상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를 내걸었다. 근로기준법을 4인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해고 제한, 퇴직금, 휴업수당, 연차휴가 등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해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도 공약했다. 초기업 단위 교섭을 활성화해 단체협약 적용 범위를 확대할 것도 약속했다. 노조의 정당한 단체행동권 행사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가압류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며 노동기본권 보장을 다시 공약했다. 특수고용노동자, 실직자·구직자 등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초기업 단위 단체교섭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단체협약 적용 범위도 확장하겠다고 했다.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한도 다시 나왔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도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노조 결성권 등 노동3권 보장, 단체협약의 산별 전체 적용, 파업 시 공격적인 직장폐쇄 및 손배·가압류 금지 등을 공약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기존 민주당 공약에 더해 ‘(가칭)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기본법 제정’을 공약했다.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노동자의 개념에서 벗어나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해 주로 직접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는 일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도 ‘일하는 시민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보수 정당은 진보진영보다는 좁은 범위 내에서 노동공약을 드문드문 내놨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특수고용직 산재보험·고용보험제도 설계, 특수고용직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를 약속했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향후 2년 동안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화할 것과 특수형태업무종사자 산재·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추진, 새로운 특수고용 직종 보호 강화 등을 공약했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는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 지원 강화를 내걸었지만 직업능력개발 기회 확대 등에 그쳤다.

18~20대 대선에서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공약은 유사하게 반복됐지만 정책으로 반영되거나 관련 법이 국회에서 개정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사용자가 노조의 파업 및 단체행동권 행사에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두 차례 폐기됐다.

2022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돼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졌지만 대상은 보험설계사, 방문강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18개 직종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개 직종이 아닌 모든 노동자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초기업 단위 교섭 활성화 공약도 2021년 노조법 개정으로 일부 반영됐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권고 형식에 그쳤다. 22대 국회에 정혜경·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초기업 단위 노조의 단체교섭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 노동기본권 보장 관련 정책은 대다수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기본법은 22대 국회에서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대표발의했다. 일하는 사람에게도 근로기준법 등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에 맞서 지난해 국민의힘과 고용노동부도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안을 내놨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을 ‘노동약자’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직무능력 개발, 소액생계비 자금 대출, 일·가정 양립 장려금 지급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으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는 결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노동기본권 보장을 내걸지만 집권하면 경영계 눈치를 본다고 비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정치권은 선거 때는 단체교섭 확대 등에 동의하다가도 막상 집권하면 ‘파업공화국 된다’는 기업 반대를 부담스러워한다”며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는 것도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역구 소상공인·자영업자 눈치를 본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실용주의 우클릭’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실용주의가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요구를 적당히 절충하고 반영하는 쪽으로 간다면 노동 의제는 왜소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 소장은 “2025년 현재 한국 사회에 최소한 이 정도의 노동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정책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세부 정책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 어떤 사회로 가고 그를 위해 어떤 정책 틀을 가져갈 것인지다”라며 “정치권이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 갈등적인 쟁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데 이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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