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여는 창

가톨릭교회 전례력으로 보면 지금은 대림 시기입니다. 한 해의 문을 닫으며 동시에 새로운 시간을 여는 계절입니다. 대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과거의 한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추억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미 오셨으되, 지금도 오고 계시며, 앞으로 다시 오실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대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겹쳐있는 신비한 시간입니다.
신학에서는 대림을 두고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완성은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기다려지고 있습니다. 이 긴장은 인간 존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아직은 다다르지 못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 시기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전례의 색도 화려한 흰색이 아니라 보라색입니다. 들뜬 축제를 미루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택합니다. 기쁨을 앞당기기보다, 기쁨이 머물 자리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대림은 성급한 환호 대신, 조용한 준비를 택하는 시기입니다.
대림초도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 주에는 한 개의 초만 켜집니다. 어둠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빛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매주 한 자루씩 촛불이 늘어나지만, 마지막 초가 켜지기 전까지 기다리는 공동체로 머뭅니다. 희망은 언제나 단번에 완성되지 않고, 조금씩 자라납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를 떠올려봅니다. 여행의 절정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떠나기 전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일정을 짜고, 풍경을 상상하고, 날씨를 확인하며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납니다. 여행의 시간은 짧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깁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어떤 순간의 성취나 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진짜 마음이 자주 움직였던 순간은 그 이전의 시간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올 것이라 믿고 준비하던 시간입니다.
대림이 가르치는 기다림은 소극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성찰하고, 깨어 있으라는 부름입니다. 마음을 정돈하고, 희망이 머물 자리를 비워 두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기다림은 삶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은 도착하는 감정이 아니라, 기다림의 능력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견딜 수 있고, 불완전한 오늘에서도 내일을 기대하는 힘입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상태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당정원 예원의 겨울을 바라봅니다. 나무들은 잎을 내려놓고, 꽃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봄의 약속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가장 많은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생명의 다른 이름입니다.
행복도 같습니다. 행복은 절정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완성에 머물지 않습니다. 행복은 기다림 속에서 자라고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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