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는 요즘, 우리는 종종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흔히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일을 떠올리지만, 매일 반복되는 식사야말로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끼의 선택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할 수도, 늦출 수도 있다면, 식탁 위의 변화는 더 이상 사소한 일이 아니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란 어떤 활동이나 제품 생산 등을 위해 개인이나 조직이 직접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말한다. 자동차 운전이나 보일러 가동 등으로 이산화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경우는 직접 배출에 해당하고, 전기를 사용할 때 집 안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지만, 발전소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셈이다. 탄소발자국의 단위는 CO₂e(이산화탄소 환산량)로 나타낸다.
탄소발자국은 식생활 전반에서 발생한다. 식재료의 생산, 가공과 포장, 생산지에서 매장까지의 유통, 그리고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탄소발자국은 약 12톤 CO₂e이며, 이 중 식생활이 약 20~3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다행히도 식생활에 의한 탄소 배출량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다. 동물성 식품 100g당 탄소 배출량(kg CO₂e)은 쇠고기 27.0, 돼지고기 12.0, 닭고기 6.9, 달걀 0.6으로 쇠고기가 가장 높고, 동물의 크기가 작을수록 낮다. 반면 식물성 식품의 탄소 배출량은 콩 2.0, 곡류 0.4~1.0, 채소·과일 0.2~1.2, 해조류 0.1~0.3으로 전반적으로 낮다. 즉, 동물성 식품은 식물성 식품보다 단위당 탄소발자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쇠고기의 탄소발자국이 높은 이유는 소의 생물학적 특성과 사육 방식 때문이다. 소는 반추동물이기 때문에 되새김질을 하면서 메탄가스를 다량 방출하는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25배 강한 온실효과를 가진다. 또한 사료용 곡물 재배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료에서 아산화질소가 발생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약 298배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산림을 벌채해 방목지를 확보하면서 탄소 흡수원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사육과정에서는 사료 운반, 물 공급, 축사 관리 등에 전기와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긴 사육기간과 냉장 유통 과정 또한 탄소 배출을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식생활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을까? 실천 가능한 방법은 생각보다 많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거창한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식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첫째,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채식 위주의 식사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일주일 중 하루를 ‘채식의 날’로 정하거나, ‘점심은 채식주의자’와 같이 일주일 중 한 끼만 실천해도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쇠고기 대신 두부, 달걀, 닭고기 등 저탄소 대체 단백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제철 식품과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제철 식품은 난방용 에너지를 쓰는 비닐하우스 재배보다 탄소 배출이 적다. 집 근처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면 생산지와 유통지 간의 거리가 짧아 운송 중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으며, 신선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수입 농산물은 장거리 운송과 냉장 보관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셋째, 가공식품을 줄이고 자연식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공식품은 원재료를 수확한 이후 가공, 포장, 유통 단계에서 에너지와 자원이 추가로 투입되며 그만큼 탄소 배출도 커진다. 반면 채소, 곡물, 생과일과 같은 자연식품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넷째,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약 95kg으로, 세계 평균인 79kg보다 높은 수준이다. 음식물 쓰레기의 약 70%는 가정과 소형 음식점에서 발생하며, 대형 음식점 16%, 집단 급식소 10%로 뒤를 잇는다.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고, 적정량만 조리하며, 먹을 만큼만 덜어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남은 음식은 푸드뱅크 등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섯째,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운영하는 제도로,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농축산물에 부여된다. 소비자에게는 품질과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선택하는 길이 되고, 생산자에게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기회가 된다. 저탄소 인증 제품은 단지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실제로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소비자의 이러한 선택이 곧 생산자에게 지속가능한 방식을 장려하는 메시지가 된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일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식생활 변화는 누구나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식탁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 가장 가까운 실천의 출발점이다. 작지만 큰 변화, 오늘의 식탁에서 시작해보자. 기후 위기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지구의 미래는 거창한 제도나 기술보다 수많은 개인의 작은 변화에 달려 있다. 매일 세 끼니의 식사, 그 안에는 수십 번의 선택이 들어있다. 오늘의 장바구니, 한 끼의 식탁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시 생각해볼 때다. 지구는 거대한 시스템이지만, 그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한 끼 밥상이다.
박은숙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전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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