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가 미니 전기차를 앞세워 일본 경차 시장 공략에 나선다. 유럽에서 전기차의 원조 격인 테슬라를 앞지른 BYD가 일본 토종 완성차의 ‘텃밭’인 경차 시장을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1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BYD는 내년 하반기 일본 시장 출시를 목표로 전기차 ‘케이(Kei)’를 개발하고 있다. 케이는 외관부터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박스형 미니 자동차로, BYD가 현지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특화 전략을 세웠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BYD는 케이의 중국 시판을 건너뛰고 곧바로 일본 판매부터 시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철저한 현지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경차 판매가 180억 달러(약 24조 7200억 원)를 기록한 일본은 경차가 자동차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경차 천국’이다. FT는 “(경차는)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수십 년간 지배해온 분야”라고 짚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텃밭에 BYD가 도전장을 내민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벌써부터 긴장하는 모습이다. 최근 현지 자동차 블로거들은 BYD의 케이 출시를 1853년 ‘흑선 사건’에 빗대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일본에 상륙한 이 사건이 당시 막부가 문호를 개방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BYD가 일본 자동차 시장을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BYD는 최근 말 그대로 파죽지세다. 올 4월에는 유럽연합(EU) 전체 28개 회원국에서 전기차 판매량(7231대)이 전년 동월 대비 169% 급증하며 같은 기간 49% 감소한 테슬라(4월 판매량 7165대)를 사상 처음으로 역전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유럽 자동차 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2023년 본격 진출한 일본에서도 BYD의 판매량 증가세는 일본 토종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JAIA)에 따르면 닛산(-44%)과 미쓰비시(-64%), 도요타(-30%) 등 일본 자동차 회사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크게 감소했지만 BYD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54%나 껑충 뛰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YD가 케이의 판매 가격을 현재 최저 수준인 일본 닛산의 사쿠라(260만 엔)와 비슷한 290만 엔대로 맞출 것으로 예상했다. 도후쿠지 아쓰키 BYD 일본 지사(오토재팬) 대표는 “일본 소비자가 선호하는 경차 스타일의 전기차를 저렴하게 판매한다면 (BYD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 시장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에 대해 충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닛케이는 “일본 경차 시장은 외국 회사에 문턱이 높다”며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가 2001년 일본에 경차를 출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결국 단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짚었다. 일본이 ‘길이 3.4m 이하, 폭 1.48m 이하, 배기량은 660㏄ 이하’로 경차 기준을 까다롭게 유지하는 것 또한 장벽의 한 예다. FT는 “무엇보다 일본 소비자들은 중국 브랜드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지리 등 자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BYD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BYD는 지난달 신차 판매량이 15% 증가해 지난해 3월 이후 20% 이상을 유지해오던 성장률이 둔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