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따낸 이재명 “최고의 날”…아버지는 “다시 공장 가라”

2025-04-14

6·3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이재명②

만물이 겨우내 숨겨둔 본래의 자태를 뽐내려 하던 2004년 3월의 어느 봄날. 유난히 다스웠던 햇살을 등진 한 중년 남성이 조용히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 주민교회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엔 슬픔과 좌절, 분노의 감정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이변(辯),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그 교회 담임목사 이해학이 남성의 어깨를 도닥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남성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세월을 혼자 다 맞은 듯, 나이에 비해 유난히 희끗한 그의 머리칼이 지하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각진 안경 아래 다소 부은 눈가가 여전히 촉촉했다. 불과 몇 시간 전 “XXX들아”라고 울분을 토하며 울던 이재명 변호사(당시 41세, 이하 경칭 생략)였다.

그는 성남시의회 본회의장에서의 ‘소란’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이재명은 교회 지하에 있는 1평 남짓한 기도실에 몸을 숨겼다. 그러다 바람을 쐴 요량으로 교회 옥상에 올랐다. 밝은 햇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맞은편 시청 담벼락엔 노란 개나리가 만개했다. 눈부시게 노란빛이 차오른 눈물 탓에 수채화처럼 보였다.

27년 전 학교 대신 통근했던 ‘아주냉동’ 담벼락에도 유난히 개나리가 많았다. 배곯던 시절 꽃은 제법 쏠쏠한 간식이었지만, 달달한 참꽃(진달래)과 달리 개나리는 쓴맛이 강해 먹을 수 없었다. 이후 개나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존재도 잊고 살았다.

그랬던 개나리가 시야 가득히 나타나자 망각 속에 묻혔던 옛 기억이 소환됐다. 세상이 노란빛으로 물들더니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부신 개나리 앞에서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을 입고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까먹는 볼 빨간 14세 소년공(工) 이재명이 보였다.

그때 수배자의 고단함은 사라지고 투지가 되살아났다. 훗날 이재명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정치인 이재명’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그날의 투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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