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야 배운 용어가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할 때 쓰는 말이다. 유네스코의 운영지침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 실감이 난다. 여기서 ‘탁월하다’는 것은 ‘독보적’이라는 뜻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의 중요성을 가리킨다. 또 ‘보편적’이라는 것은 해당 유산이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전체 인류에게, 그것도 현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길게 말할 것이 없다. “이 유산을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국제사회 전체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도대체 세상 어떤 것에 이런 가치가 부여될까. 유네스코는 전남 신안에서 충남 서천으로 이어진 갯벌이 그렇다고 했다. 갯벌은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까지 초장거리 이동을 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라고 한다. 이를테면 큰뒷부리도요 같은 새가 그렇다. 이들은 1만㎞가 넘는 거리를 일주일 가까이 쉬지 않고 날아서 간신히 여기에 도착한다. 한 생태학자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비행 동안 지방과 근육 속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뼈와 가죽만 남은 채로 도착합니다. 날갯죽지를 축 늘어뜨린 채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습니다.”
여기는 이런 곳이다. 지구의 반을 날아온 수십만의 새들이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을 잠시 의탁하는 곳.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곳의 가치는 탁월하고 보편적이다. 사실은 가치라는 말조차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볼품없이 느껴질 정도다. 영생하는 하늘의 천사들이 아니라 멸종을 앞둔 자연의 천사들 앞이어서 더욱더 그렇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자연유산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는 지침은 “그대로 온전하게”이다. 인간의 손발을 함부로 들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손을 대면 만금의 가치가 쏟아진다고 믿는, 아니 그렇게 믿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착공이 예정된 새만금 신공항 이야기다. 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은 무려 27종의 국제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곳이며, 세계자연유산인 서천갯벌에서 겨우 7㎞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불과 몇해 전 정부는 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이 일대가 철새와 관련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우리는 지난겨울 ‘버드 스트라이크’로 끔찍한 항공기 참사를 겪었다.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그야말로 모든 게 “당혹스럽다”.
내 생각에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여기가 ‘새만금’이어서 그렇다. 새만금은 이런 곳이다. 개발의 이유를 바꿀지언정 개발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40년 전에는 농지가 필요하다고 했고(쌀이 넘쳐나던 때), 20년 전에는 산업단지가 필요하다고 했고(인근 산업단지가 텅 비어 있던 때), 이제는 친환경적 사업의 유치를 위해 공항이 필요하다고 한다(기후위기 시대에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매립하면서 탄소배출원인 비행기라니). 글로벌한 부끄러움을 안겨준 재작년의 잼버리 대회도 애초에는 신공항 건설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신공항은 착공도 하지 않았지만 환상 속에서는 잼버리 대회 참석자들을 이미 실어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새만금개발청 홈페이지는 새만금 신공항을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의 도약을 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라니, 홍보 직원도 믿지 못할 말을 천연덕스럽게 쓴다. 얼마 전에는 지역 경제단체들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도 신공항 건설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제는 올림픽이다!). 모순에 모순을 더하고 거짓에 거짓을 더하면서 건설사들이 이익을 뽑고, 정치인들이 표를 챙기고, 공무원들이 하다못해 월급이라도 받은 곳이 새만금이다. 새로 만금을 얻을 수 있는 곳, 만금을 벌 수 있다는 욕망의 불이 사그라들지 않는 곳, 이제는 그 불이 꺼질까 봐 불안해서 더욱 부채질을 해대는 곳이 새만금이다.
이제는 이 불을 꺼야 한다. 수십년간 타오른 환상의 불 때문에 수많은 실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모두가 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들이다.
다음달 1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부디 세상에는 새만금이 아니라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선고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 선고 일정에 맞추어 지금 수라갯벌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새, 사람 행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새와 사람이 함께 걷는 길, ‘새’ 다음에 ‘만금’이 아닌 사람과 생명을 둔 이 행진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