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 도시개발에 장애물인가? 올해 장마에도 울산은 큰 홍역을 치렀다. 무엇보다 이번 폭우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인 삼호교가 침하・붕괴했다. 최근 들어, 관광산업에 큰 기대를 걸고 태화강을 중심으로 많은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울산으로서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삼호교 침하를 호우에 의한 자연재해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우리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 관리를 어떻게 해왔는지를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100년이나 넘게 태화강의 빠른 유속에 삼호교 침하가 보고되었기 때문에 인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대 문화유산 씨가 마른 울산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문화적 시민권의 측면에서 울산의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에 대한 관점과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언제나 도시개발은 역사를 지우고서야 가능할까?
인간의 삶에서 도시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도시개발은 역사를 지우고서야 가능한가. 중산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철기시대 유구는 스포츠 타운 건립으로 인해 덮였고, 울산 읍성에 놓은 식민지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울산 최초의 우체국과 울산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삼일회관 역시 재개발 압력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20년 전 김민수 교수는 “울산은 마치 표백제를 뿌린 듯이 근대 역사를 지워버렸다”라고 탄식했다. 그는 “광역시 수준의 역사의식이 문화유산의 수난을 끝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
삼호교는 울산의 몇 안 되는 근대건축이자, 울산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로써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삼호교 페인트칠 사건은 어떡해서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해프닝일 수 있다. 하지만 삼호교는 명색이 국가등록문화유산이 아니던가. ‘석가탑과 다보탑의 돌 표면과 색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알록달록 색칠을 했다’라고 생각해 보라. 1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인간의 기억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 놓은 궁극의 아우라를 형광색 페인트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마치 로마 신전 기둥에 “김○○ 다녀가다”라고 낙서한 몰상식과 다르지 않다. 문화경제 시대, 무분별한 문화유산 활용 정책이 낳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미래문화유산, ‘남는 것보다 남기는 것’에 대한 관심
오늘 우리는 역사와 문화적 DNA를 지우지 않고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남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 문화유산에 참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문화유산을 재화 가치나 정보 가치를 담고 있는 물질적 재산, 즉 문화재(財)로 보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재는 점차 상속을 통해 세대 간 전달되는 유산(遺産)의 의미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문화경제 시대는 문화유산을 과학, 경제, 학문, 문화 등 인류 삶의 전 분야를 풍요롭게 해주는 자원으로 만들었다. 이제 문화유산은 미래 세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도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보장 수단이 되었다.
이로부터 각 나라는 문화유산 형성의 토대가 되는 역사 환경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역사 환경은 공동체의 경험과 기억, 미감과 지향을 자극하고 촉진함으로써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한다.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기본 조건에 공동체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유산은 이제 공동체 참여가 핵심 요소가 되었고,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남은 것’에서 현재가 미래를 위해 ‘남기는 것’, 즉 미래문화유산으로 확대된다. 이미 서울과 전주는 미래에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형유산과 생활문화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 활용하고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미래문화유산, 시민문화권 보장과 증진에서 시작
문화유산이 ‘남기는 것’이 된 이상, 이제 문화유산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열쇠는 시민의 문화적 역량에 달렸다. 영국은 문화적 역량을 “문화의 버전을 함께 창조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로 정의한다. 즉, 공동체가 문화유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버전을 함께 마음껏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기본법에 따르면, 문화유산에 대한 참여의 자유와 환경 제공은 국가의 책무이며, 국가 책무의 목적은 문화를 만들 권리, 즉 시민문화권 보장에 있다고 한다.
이번 삼호교 침하와 태화강 범람 위기는 공업 도시와 문화 도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는 울산시에게 큰 숙제를 남겨준다. 갈수록 고유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문화산업은 클래식한 거대 인프라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없다. 전세계 영화관과 음원차트를 점령한 ‘케데헌’의 캐릭터는 무당, 저승사자, 민화 속 호랑이다. 이제 세계는 고유한 문화유산에 열광한다. 그리고 고유한 문화유산은 해당 지역에 뿌리박은 공동체가 만든다. 따라서 울산의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방법은 행정권이 아니라 시민문화권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이다.
이강민 (사)울산민예총 정책위원장, 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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