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따!" SK 뚫은 초짜 검사…30세 한동훈이었다

2024-09-20

추천! 더중플 -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검찰청 문턱을 넘나드는 사건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 중 검찰과 언론이 간택해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수명이 길진 않습니다. 애초에 관심을 받은 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 이렇게 묻히고 잊혀도 괜찮은 걸까요. 더중앙플러스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09) 에서는 잊히고 묻힌 사건의 이면을 다룹니다. 정치인이 돼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검사들의 옛 모습이 궁금하거나, 그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여정에 동참하길 권해드립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시리즈의 일부 회차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제1부 한동훈과 SK①〉

월요일은 무겁다. 휴식의 뒤끝, 손과 발은 무디다. 서울의 중심인 사대문 안, 거기서 밥을 벌고 있던 샐러리맨들이 무겁고 무딘 오전을 보내던 한 월요일이었다.

그들의 생체리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과 살기가 인근에서 감지됐다. 그걸 뿜어내던 월요일의 ‘소수파’는 꼭 60명. 그들의 손과 발은 일촉(一觸)이면 즉발(卽發)할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시계 종이 열 번 울릴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팽팽하던 긴장감 덩어리들이 폭발했다. 뒤로 한껏 당겼다 놓은 스프링 장난감처럼 튕겨나간 그들은 일제히 표적의 중심으로 돌진했다.

그들 중 가장 큰 무리가 종로구 서린동의 한 대형 빌딩으로 진격했다. SK그룹 본사인 SK서린빌딩이었다.

방호원들이 대경실색하며 그들을 막아섰고, 급보를 듣고 달려온 직원들이 인간 바리케이드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대는 예상 밖의 대병력이었고 빨랐다. 그들은 오프사이드 트랩 깨뜨리듯 손쉽게 그걸 돌파했다.

그 난입은 합법적이었다. 그들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의 각 부에서 차출된 검사와 수사관들이었다. 전날 밤늦게 발부된, 따끈따끈한 압수수색영장을 쥐고 있었다.

적진을 뚫고 앞장선 선두 그룹은 33층의 가장 큰 방으로 진격했다. SK그룹 구조조정본부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미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게다가 두 명이 마중 나와 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반겼다.

한 명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 수석검사 이석환(전 청주지검장·이하 존칭 생략)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말석이나 다름없던 초임 검사 한동훈(전 법무부 장관, 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다.

두 검사는 어떻게 건물 안에 미리 들어가 있었을까.

‘트로이 목마’ 작전의 전모

그들은 거사 전 SK 본사 주변에 자주 출몰했다. 그리고 1층 로비의 구조와 출입 시스템, 방호원 숫자 등을 면밀히 파악했다.

전례 없는 대규모 대기업 압수수색을 앞두고 만반의 채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수사의 성패가 이 압수수색에 달려 있었다. 허투루 달려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SK가 압수수색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 경비 인력들에게 배포했다는 소문까지 돌던 터였다(소문은 이후 사실로 밝혀졌다).

두 검사는 경비가 삼엄해 그냥 들이닥쳐서는 승산이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수사팀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나온 게 ‘트로이 목마’ 작전이었다.

몇 명이 미리 내부에 들어가 기선을 제압한 뒤 신호를 보내고, 본진이 들이닥치면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했다.

문제는 ‘목마’를 성안으로 어떻게 집어넣느냐는 것. 수사팀은 양동작전을 펴기로 했다. 시민단체의 SK 고발 건과 관련해 SK 구조조정추진본부장 김창근(전 SK이노베이션 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당시만 해도 검찰이 SK를 심각하게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은밀하게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환 이유를 묻는 김창근에게 수사팀은 “시민단체가 고발해 요식행위 차원에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걱정할 일 아니다”고 안심시켰다.

2003년 2월 17일 오전 9시 김창근이 서울지검에 출석했다. 그 직후 이석환과 한동훈이 SK빌딩에 나타나 구조본 임원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김창근 소환과 관련해 잠시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게 면담 신청 사유였다. 앞뒤가 맞는 전개에 SK 측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성문’은 활짝 열렸다. 두 검사는 유유히 진입한 뒤 때가 도래하자 압수수색영장을 내밀고 구조본을 장악했다. 그러고는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쳤다.

압수수색 대성공… SK 목줄 틀어잡았다

지원 병력과 함께 구조본을 마음껏 유린한 두 검사는 한 층 위로 올라갔다. 거기에 SK 회장 최태원의 집무실이 있었다.

회장실에서는 중요한 서류 뭉치들이 무더기로 포획됐다. 그중 한동훈의 시선을 유난히 잡아끈 서류가 있었다.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 엄청나게 큰 단위의 숫자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었다. 그게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산더미 같은 서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이 확인된 건 며칠 뒤의 일이었다. 한동훈은 해독을 뒤로 미루고 일단 상자 안에 그걸 쑤셔 넣었다.

다음 타깃은 그룹 회장 손길승의 사무실이었다. (당시 손길승을 그룹 회장을 최태원은 지주사인 SK(주) 회장을 맡고 있었다) 금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훈이 SK 측에 요구했다.

금고 여세요.

순순히 응할 리 없었다.

안 됩니다. 열 수 없습니다.

팽팽한 공방이 이어지던 끝에 한동훈이 수사관에게 지시했다.

SK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 거기서도 중요한 서류들이 마구 쏟아졌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검찰의 압수수색은 오후 6시가 돼서야 종료됐다.

대기업 자체를 겨냥한 수사로는 초유의 사례로 기록된 1차 SK 수사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권력 교체기에 제대로 ‘사고’ 친 형사9부

공화정의 권력 교체기는 곧 권력 공백기다. 대통령이되 이미 대통령이 아닌 자와 대통령이되 아직 대통령이 아닌 자가 공존한다. 누군가 사고를 치기 좋을 때다.

2003년 2월 그때가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은 짐을 싸고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정식으로 권좌에 앉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친 건 특수부(현 반부패부)도, 공안부(현 공공수사부)도 아니었다. 서울지검 형사9부라는 생소한 조직이었다.

경제 수사는 특수부가 맡는 게 상례다. 특수부는 국세청·금융감독원과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크고 작은 기업과 금융사들을 감시하고 때로 가차 없이 벤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몇 개의 특수부만으로는 경제사범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특수부는 자고이래 경제사범보다는 그 경제사범으로부터 돈을 받아 챙긴 정·관계 거물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좀 더 세밀하게 경제·금융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그 결과 2001년 6월 새로 만들어진 게 형사9부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특수부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금감원이나 국세청 고발 사건 등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맡아 처리하는 게 그 부서의 신설 이유였다.

하지만 형사9부는 그럴 의향이 없었다. 특수부처럼 스스로 인지 수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낸 게 막 30세가 된 초임 검사 한동훈이었다.

한동훈은 사법연수원 27기를 수료한 뒤 입대해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이행했다. 제대 후 첫 임지로 부임한 곳이 바로 신설 부서였던 형사9부다.

그는 방송에서 특정 종목을 홍보해 주가조작을 도와준 뒤 2억원을 받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구속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널리스트가 구속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어 사채업자들의 가장납입 자금 대여 사건 수사에 참여해 선배들과 함께 경제부총리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한동훈이 본격적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계기는 역시 SK 수사였다.

사실상 최초의 대기업 수사 본격 개막

2002년 12월 13일 YTN에서 보도가 하나 나왔다. SK 회장이 보유 중인 워커힐 주식과 SK 계열사가 보유한 SK(주) 주식이 맞교환됐는데 이 과정에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내용이었다. 형사9부는 심상치 않은 사안이라고 보고 내사에 착수했다.

일이 되려고 했던지 이듬해 1월 초 한 시민단체가 “SK증권의 파산을 막기 위해 이 회사가 내야 할 손해배상금을 SK글로벌이 대신 부담하게 했다”며 SK 최고위층들을 대거 고발해 왔다.

대기업 수사가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공여 혐의로 여러 기업이 도매금으로 묶여 공동 처벌받은 경우였다.

대기업 하나를 표적 삼아 그 자체의 구조적 불법·편법 행위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건 1차 SK 수사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전례가 드물었던 만큼 기업 측의 대비도 꼼꼼하지 못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변호사 A는 “사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은 공정위나 금감원을 더 무서워했다. 검찰은 관심권 밖이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에 하릴없이 무너진 SK는 버틸 힘이 없었다. 회장 최태원은 압수수색 5일 뒤인 2월 22일 전격 구속됐다.

구속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최대 20일간의 추가 수사를 통해 최종 공소사실을 확정한 뒤 기소해야 형사소송의 첫 번째 절차가 종료된다.

선배 이석환과 함께 보강 조사에 집중하던 한동훈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계속)

📝 ‘SK 분식회계와 한동훈’편 목차

“당장 금고 따!” SK를 뚫었다 ‘트로이 목마’는 30세 한동훈

최태원 구속 직후 들이닥쳤다 한동훈 뜻밖 손님은 노소영

“분식회계!” 암호 푼 한동훈 노무현 정부 폭탄 맞았다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 다른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조현오가 키운 ‘조국 오른팔’? 황운하 ‘룸살롱 황제’ 처넣다

경찰 1명이 50억 받아 갔다, 룸살롱 상납받은 ‘꿀보직’

“경찰 간부들은 계륵이야” 뇌물 풀세트 다섯 곳은 여기

“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 2012년 룸살롱 황제의 고백

‘쓰리스타’도 심문했던 죄수…김대업, 이회창에 맞짱 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