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7일) 나는 방한 중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 恵美子) 씨와 함께 지난해 돌아가신 오희옥 지사의 참배를 위해 국립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엘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17일, 98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는 그를 아는 많은 분으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던 애국지사였다. 국립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616-023>에 계시는 오희옥 지사의 유해는 무궁화꽃이 돋을새김된 작은 청자단지에 모셔져 있다. “열네살 소녀 독립군이었던 나의 자랑스런 어머니 오희옥 지사”라는 글과 함께 청아한 한복차림의 오희옥 지사 사진은 지난해 영결식 이후 자녀분들이 만들어 붙여둔 듯했다.

마츠자키 씨와 나는 미리 준비한 꽃을 들고 고개 숙여 오희옥 지사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워낙 한분 한분의 유해를 모신 공간이 좁아서 마츠자키 씨가 마련해 온 생화꽃은 망자에게 바치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간 붉은 카네이션만 유리에 붙여두고 충혼당을 나왔다. 밖은 화창한 봄이었다. 충혼당 주변의 벤치에는 삼삼오오 유가족들이 환담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커피와 딸기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지고 왔기에 오희옥 지사 참배 뒤, 마츠자키 씨와 함께 충혼당 주변의 등나무꽃이 활짝 핀 벤치에 앉아 ‘야외까페’처럼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마츠자키 씨는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모임’인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으로 지난 2019년 7월 13일, 당시 서울보훈병원에 입원 중이던 오희옥 지사를 병문안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츠자키 씨는 “침상에 오랫동안 누워계시는 오희옥 지사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났어요. 이 무더위에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서 쾌차하시길 빕니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코로나19’로 서로 사이 왕래가 끊긴 채 간간이 소식만 주고받는 동안에도 마츠자키 씨는 고려박물관에서 전시 기획 중인 한국 관련 여러 정보를 전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자매처럼 이런저런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향기로운 헤이즐넛 커피향이 등나무꽃향과 어우러져 꽃동산에 와 앉은 듯 감미로웠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잠시, 마츠자키 씨는 지난달 초 101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동안 노부모 공양을 소리 없이 해왔던 마츠자키 씨의 마음이 전해져 울컥했다. “천수를 다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죽음이 큰 슬픔으로 다가왔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라고 했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마츠자키 씨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1912-1924) 때 조선에 건너와 경원선(서울-원산) 철도회사에 근무했으며 이후 서울 서빙고역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자신의 아버지는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형제자매 4명의 고향이 모두 조선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마츠자키 씨와 나는 ‘코로나19’ 이전에는 고려박물관 일로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마츠자키 씨가 유달리 한국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 ‘부모님의 고향이 조선’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꼈다. 순간, 몇 해 전 세상을 뜬 아베 다케시(阿部建) 씨가 떠올랐다. 1933년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서 살았던 조부모를 비롯하여 일가(一家) 40명이 조선에서 나고 죽었다고 했다. 그런 가족사 때문에 아베 다케시 씨는 고향 청진을 무대로 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쓰던 중 2016년 7월, 노구(당시 84살)를 이끌고 서울에 온 적이 있다.

소설의 무대인 북한 청진에는 가보지 못하지만, 북한 땅이 건너다보이는 임진각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그때 통역 겸 안내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때 장면이 뇌리를 스쳐 갔다. 아베 다케시 씨와 임진각의 녹슨 철마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발아래 끊어진 녹슨 철로 위에 아베 다케시의 가족이 살던 ‘박천 맹중리 290킬로’라는 또렷한 표지가 눈에 띄었다. 푹푹 찌던 불볕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향땅 이름이 적혀 있던 그 철로 위에서 아베 씨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아베 다케시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완성하여 방한 2년 뒤인 2018년 11월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2019년 5월 31일,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지인들이 아베 다케시 씨를 추모하는 문집을 만들고자 한다며 나에게도 ‘아베 다케시 씨와의 인연’에 대한 글 한 편을 보내 달라는 전갈이 왔었다.
“그리운 아베 다케시 선생님!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애통한 소식을 듣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건강도 안 좋은 상태에서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완성하신 선생님의 초인적인 정신력에 다시 한번 존경의 말씀을 올립니다. 선생님! 고통 없는 그곳에서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의 무대인 평안남도 박천의 맹중리(孟中里)도 가보시고 소설 속의 일가친척들도 모두 만나 기쁜 해후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보낸 적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주변의 긴걸상에서 나는 마츠자키 에미코 씨로부터 아버지 일가(一家)의 ‘조선과의 인연’ 이야기를 들으며 무려 ‘40명의 일가가 조선에서 나고 죽었다’라는 아베 다케시 씨를 떠올렸던 것이다. 혹시 마츠자키 씨도 할아버지 일가의 조선에서의 삶이 궁금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원산까지는 가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천이나 서빙고역 등에는 함께 가봐도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북한 땅이 보이는 파주 임진각에 가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일정상 시간이 빠듯한 관계로 그 뜻을 이뤄주지 못했으니 아쉬운 마음뿐이다.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고려박물관의 회원이 되고, 이어 운영위원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의 역사를 공부해 온 마츠자키 에미코 씨! 이번 방한을 통해 그의 가족사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번 방한 때에는 서빙고역장을 지내던 조부와 당시 중학교 2학년으로 성동중학교에 다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안내하고 싶다.
“가해자는 가해를 없는 것으로 여기고 점차 잊어간다(일본). 그러나 피해자는 입었던 그 피해를 영원히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한국)”

균형 있는 역사 감각으로 한일 관계를 바라보고 있는 마츠자키 씨, 한국의 독립운동가에 경의를 표하는 마츠자키 씨와의 그제(27일) 하루는 그래서 더욱 뜻깊었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ㆍ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
고려박물관은 위와 같은 목표로 1990년 9월 설립(당시 이사장 무라노 시게루)했으며,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 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2025) 설립 35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만든 순수 민간단체로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려박물관 찾아 가는 길★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 쇼쿠안도오리(職安通)
한국'광장'수퍼 건너편 광장 건물 7층
*전화:도쿄 03-5272-3510 (한국어 대응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