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공지능(AI)과 관련해 100조원에서 수백조원까지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투자금액의 적절성은 논외로 하고 AI 역량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며 AI가 일상 깊숙이 파고들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현재 AI는 로봇, 자율주행, 예측 및 창작 분야뿐 아니라 모든 산업과 사회에 깊이 들어왔다. 일상적 질문에 대해서도 챗GPT(지피티)나 퍼플렉시티가 구글이나 네이버보다 명확한 답을 제공한다.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상품 개발, 생산, 마케팅, 고객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맞춤 고객 자동화’ 알고리즘을 정교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과 알고리즘이 경제를 장악하면 할수록 ‘사람’ ‘자연’과 같은 근원적 가치를 지키는 기업은 여름밤 반딧불처럼 눈부시다. 성심당과 파타고니아가 좋은 예다.
‘빵지순례 1번지’가 된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했다. 300개의 빵을 만들면 100개를 이웃에게 나눠주겠다는 다짐으로 빵집을 운영하면서 이제는 대전 문화의 상징이 됐다. ‘모든 이가 다 좋게’라는 비전으로 질 좋은 빵을 놀라운 가격에 판매해 소비자를 감동시켰고 대전을 ‘빵 성지’로 만들었다. 기업의 ‘진정성’에 소비자가 열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지난해 매출 1937억원, 영업이익 478억원을 달성해 대형 프랜차이즈를 앞섰다. 수도권이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기업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된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이다. 창업자 이본 취나드는 암벽등반가이자 환경운동가로 ‘지구가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가장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서도 환경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겠다는 도전적 비전이다. 의류업계 최초로 버려진 페트병을 모아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단을 만들고,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에서 얻은 순면으로 대체했다. 2011년 ‘우리 재킷을 사지 말라(Don’t buy this jacket)’는 충격적인 광고로 분별없는 소비를 경고했다. 쇼핑 열기가 가장 뜨거운 블랙프라이데이에 나온 이 메시지는 관심을 끌기 위한 일회성 광고가 아니라 일관된 행동의 한 장면이었다. 소비자들이 그 진심에 열광하면서 파타고니아는 진정성 있는 기업의 상징이 됐다.
진정성(authenticity)이란 ‘거짓이 없이 참으로’라는 의미의 진정(眞正)에서 파생된 단어다. 진실성이나 진심과 비슷한 의미다. 기업에서 진정성이란 ‘기업의 가치, 사명, 행동이 진실되고 일관돼 신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진정성은 고객 신뢰와 브랜드 신뢰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성심당과 파타고니아의 홍보 자료에는 유명 연예인이 없는 대신 경영 비전과 가치가 깨알같이 들어 있다. 두 회사도 당연히 이익을 추구하지만 나눔의 문화, 자연 보호라는 상위 비전을 진정성 있게 꾸준히 실천한다.
AI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AI와 첨단 과학이 모든 것을 복제해도 인간적 감성과 관계를 대체할 수 없으며 사라지는 북극 얼음을 되살릴 수 없다. AI 사회로 나아갈수록 상생과 자연을 지키는 기업의 노력은 더욱 소중하다. 요란한 홍보나 화려한 광고보다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라는 노랫말처럼 진정성으로 빛나는 기업을 화면에서, 거리에서 만나고 싶다. 반딧불 같은 기업들이 지구촌 동네마다 출현하길 기대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IT 금융경영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