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헤리티지노믹스' 전략을 짜라

2025-05-18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에 제작됐다. 1000년 이상을 버틴 이 놀라운 종이의 정체는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한지(韓紙)'다. 한지는 루브르박물관, 교황청 등에서 주목을 받으며 '미래에서 온 종이'라는 극찬을 받는다.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지가 정작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종이가 뭐 이렇게 비싼가'라는 푸대접을 받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은 어떠한 사업전략으로 성장을 하며 기업가치를 제고시킬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기업 및 최고경영자는 '문화유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유산 하면 보통 '보존' '계승'이 떠오르고, 기업 입장에서는 브랜드, 마케팅, 홍보전략의 일환으로 전통 공연 및 전시 등을 후원 하기에 어찌 보면 비용 지출 항목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보존 및 계승'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신국부창출'의 원동력으로 삼는 대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 저서 '한국인에너지'에서 '헤리티지노믹스(Heritagenomics)' 라고 명명했다. 헤리티지노믹스는 우리 '전통 문화유산'을 여러 산업 분야에 접목해 '신국부창출' 및 '경제부국'으로 나아감과 동시에 찬란하고 유구한 정신 문화유산을 지닌 '문화 대국' 의 위용을 지구촌에 떨치는 새로운 국가전략이다.

◇ 우리의 오래된 전통은 인류의 미래

앞에서 언급한 미래에서 온 종이라고 주목을 받는 한지를 보자. 한지를 잠에서 깨워 '한지 로드'를 전 세계에 펼치는 청사진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지 로드는 벽지, 단열재를 비롯한 인테리어 자재로도 가능하고 패션, 의류에도 접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지는 고기능, 친환경, 웰빙의 아이콘이기에 자동차, 의료, 전자산업 등의 최첨단 산업 소재로까지 확장·접목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최첨단 전자제품 표면에 '한지 인사이드'(Hanji Inside)라는 마크를 부착한다면 지구촌 사람들이 한지가 소재로 들어간 전자제품을 사용하면서 한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끔 하는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인텔이 노트북 제조사들이 만드는 노트북 속에 인텔 '반도체 칩'이 들어있다는 일종의 자부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마크를 표시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인류의 미래가 되는 가슴 벅찬 일이다. 특히 전 세계는 치열한 소재 전쟁 중인데, 한지는 저탄소, 친환경 시대에 걸맞은 '소재 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최근 경영계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도 부합하기에 친환경, 고기능성의 한지를 신국부로 키워볼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한지 스토리가 입혀진 제품을 사용하는 지구촌 사람들이 한국 여행 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지의 본고장인 전주, 안동 등의 도시를 방문하고,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접한다면, 한국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의 '질(質)'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 K팝 등이 주목을 받으며 '대중 한류'가 지구촌에 퍼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제 대중 한류를 뛰어넘어 정신한류를 지구촌 80억 시민에게 선사할 절호의 기회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문화 예술인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뿐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사는 이야기들로 넘쳐나야 한다. 당연히 전통문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명맥이 끊길 우려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CSR 활동 또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그간 CSR는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것으로, 나눔과 기부 등의 다각적인 선행들이 펼쳐졌고, 최근에는 기후 환경, 탄소 저감에 대한 대응 등으로 진화 발전 됐다.

반면 헤리티지노믹스에서는 전통 유산 활용을 통해 제품을 차별화해 성장 토대를 마련한다. 전통문화유산을 소극적 차원의 보존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촉진하게 된다. 외국 관광객의 문화유산 도시 방문 증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1석 3조'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책임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 성장' '문화유산 산업화' '지역경제 활성화'가 함께 움직이는 새로운 CSR. 'CSR 2.0'인 셈이다.

◇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을 선사하라

우리 전통 문화유산을 활용해 전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선사할 수도 있다. 지구촌 건물들을 보라. 온통 철근, 콘크리트로 구성됐다. 언제까지 철근, 콘크리트 양식에 의존할 것인가. 쏟아지는 건설폐기물들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신라시대 8세기 당대 최고인 '황룡사 구층 목탑'의 후예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선현들은 목조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우리나라 대목장(나무를 다루어 목조건축을 하는 장인)은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다. 우리는 이 지구촌을 철근, 콘크리트에서 '목재 문명'으로 획기적으로 새롭게 써 내려가는 주역을 꿈꾸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주거 문명의 주인공이 되는것이다.

건물은 무조건 철근, 콘크리트라는 틀을 과감히 깨고, 목조 오피스빌딩, 목조 아파트 등 목조건축물들이 지구촌을 수놓는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가 주지 못하는 목재 건축만의 특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치 자연을 통째로 집으로 가지고 온 듯한 느낌 말이다. 특히 건강이 더욱 중요시되고 수명연장 시대에 자연 힐링은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심미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기능적 가치 측면에서도 미래 목조건축은 뛰어난 내구성과 더불어, 화재 등의 위험 요소도 당연히 없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혁신적인 기술로드맵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한옥의 재조명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기업은 목조에 대한 찬란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경쟁업체들과의 차별화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지구촌에 새 지평을 연 애플은 시가총액이 무려 4000억원을 넘어섰다. 2007년도만 하더라도 애플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비슷했는데, 지금은 무려 10배 차이가 나고 있다. 새로운 문명을 개척한 혁신 프리미엄(Innovation Premium)인 것이다.

◇대중 한류를 넘어 '정신한류'로 지구촌을 열광시키자

유구한 50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찬란한 전통 문화유산은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전통 문화유산은 오래된 것, 옛것, 고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혁신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K팝을 비롯한 대중 한류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때, 헤리티지노믹스는 찬란한 문화유산과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을 '경제부국'과 '문화 대국'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대중한류'를 뛰어넘어 '정신한류'로 전 세계를 다시 한번 열광시킬 '비밀병기'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hong.daesoon@kw.ac.kr

〈필자〉 유네스코자문위원이자 공학한림원 회원으로,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기획위원회 부위원장과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 아서디리틀 코리아 대표 등을 역임한 기획·전략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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