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손은 한 가지 집념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반도체로 제2의 엔비디아를 만들고, AI(인공지능) 하드웨어에 투입할 수백억 달러를 모으는 것이다.”(블룸버그통신)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1000억달러(약 140조원)의 통 큰 투자를 약속한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AI 야망에 전 세계가 다시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3일 손 회장을 집중 조명한 보도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회사를 건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AI의 막대한 전력 수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열정을 갖고 있고, 그 중심에는 ARM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ARM은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약 90% 지분을 보유한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이다. 손 회장은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와 손잡고 AI 수퍼컴퓨터를 만들기로 한 데 이어 ARM의 자체적인 AI 칩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를 ARM이 사실상 독점 설계하는 만큼 소프트뱅크가 AI 경쟁에서 선두에 설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ARM 칩의 장점이 저전력인 만큼 AI 시대에 생태계 확장에 유리한 점도 있다.
다만 엔비디아 대항마로 입지를 키우려면 고급 인력과 기술력 확보, 연구개발(R&D) 투자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높은 데다, 그의 매직이 AI 칩 분야서도 먹힐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손 회장이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투자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반도체 제조에선 시험대에 올라본 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의 투자가 대박 혹은 쪽박의 극단적 결과를 보여왔기에, 1000억달러짜리 베팅을 두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일단 실탄을 어디서 확보할지다.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그룹은 9월 말 기준 250억 달러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두 번째 투자펀드인 비전펀드2가 30억 달러를 투자하고 ARM 등 손 회장 회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서 자금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그가 외부서 자금을 추가 조달하려 해도 과거 위워크 투자 실패 등의 전례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투자전문 매체 배런스는 자금 확보보다 더 큰 장애물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짚었다. 생성AI 경쟁에 가장 앞서 있는 오픈AI는 고작 1372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일자리 창출 10만개 약속’을 이행하려면 오픈AI 같은 규모의 AI기업 73개를 만들어야 한다. AI 산업은 특성상 소수의 고임금 인력에 의존하기에 제조업 같은 대규모 고용 창출이 어렵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대만 전자 제조업체 폭스콘의 투자 사례가 미국의 기대에 못 미쳤고 일자리 창출도 계획보다 미진했던 것처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손 회장이 중요한 시점에 시대 흐름을 읽어 과감한 투자를 해왔고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큰 마중물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꿈꾸며 정부 차원서 천문학적 자금을 쏟고 있는 터라 이런 흐름과 맞물려 그의 재기에 주목하고 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손 회장이 제시한 큰 비전 중 실패도 있지만 AI와 반도체를 결합하려는 그림이 포트폴리오에 있고 이 판을 크게 벌리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라며 “미국 중심으로 AI 반도체 판을 바꿔보려는 의미 있는 선언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