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디어·콘텐츠 기업인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넷플릭스와 인수합병(M&A) 계약을 완료한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를 인수하겠다며 인수 금액을 올리고 나섰다. 워너브러더스를 두고 스트리밍 시대의 아이콘과 할리우드의 대명사가 정면으로 맞붙은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가 파라마운트 측의 인수 자금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해 충돌 논란까지 일고 있다.

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파라마운트는 전날 워너브러더스 측에 공개 매수를 선언했다. 워너브러더스 이사회 측과는 합의되지 않은 적대적 M&A다. 대신 넷플릭스보다 판돈을 올렸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 주식 한 주당 27.75달러를 현금과 주식으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파라마운트는 주당 30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파라마운트가 매긴 워너브러더스의 기업가치(부채 포함)는 총 1084억 달러(약 159조 5600억 원)로 역시 넷플릭스가 매긴 기업가치(827억 달러)보다 높다. 또 영화·TV 스튜디오, TV 채널(HBO), 스트리밍 서비스(HBO 맥스) 등 사업 일부만 인수하기로 한 넷플릭스와 달리 파라마운트는 워너브러더스를 통째로 사들인다는 입장이다. 데이비드 앨리슨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인수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워너브러더스 측은 의미 있는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전액 현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워너브러더스 측도 원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파라마운트가 재도전에 나서면서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를 DVD 대여 사업으로 출발해 스트리밍 기업으로 성장한 넷플릭스가 품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파라마운트가 제동을 걸었다는 점을 두고 신흥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 간 자존심을 건 승부라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파라마운트가 워너브러더스 인수에 성공한다면 두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힘을 합쳐 넷플릭스·월트디즈니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맞서게 되는 것”이라며 “누가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든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재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업계는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합쳐질 경우 미국 구독·주문형 비디오(SVOD) 점유율이 최대 35%로 확고한 1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파라마운트-워너브러더스 조합 역시 북미 시장의 영화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점유율이 3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등 규제 당국이 점유율 30% 이상을 독점으로 간주하는 만큼 어느 쪽으로 인수되든 엄격한 반독점 심사가 불가피하다.
다만 파라마운트의 인수 도전은 이해 충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CEO인 앨리슨 가문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미국 사모펀드 어피니티 파트너스 등이 파라마운트의 ‘전주(錢主)’로 나섰는데 어피니티 파트너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쿠슈너가 운영하는 회사다. 경쟁 당국의 반독점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파라마운트가 ‘트럼프 가문’을 뒷배 삼아 적대적 M&A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가총액이 150억 달러에 그치는 파라마운트가 시총 4000억 달러인 ‘골리앗’ 넷플릭스에 과감하게 덤빈 배경에도 트럼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앨리슨 CEO의 아버지인 래리 앨리슨 오라클 창업자 겸 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며 대표적인 친(親)공화당 인사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도 “(넷플릭스나 파라마운트) 어느 쪽도 나와 가깝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받은 워너브러더스 이사회는 10영업일 이내에 공식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외신들은 이사회가 넷플릭스와 맺은 계약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하는 가운데 베팅 업체들은 넷플릭스가 내년 말까지 워너브러더스 인수를 완료할 확률을 16%로 파라마운트 재도전 선언 전(23%)보다 낮추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