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서울 성수동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아이아이컴바인드)의 신사옥이 그것이다. 오픈 전의 건물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그 외형에 있다. 주변에 비해 초고층인 점 외에도 저층, 중층, 고층부의 형태가 모두 달라 마치 세 개의 건물을 섞은 듯한 모양이다. 특히 네 방향으로 뻗은 고층부는 도심의 평범한 여러 건축물을 굽어보는 망원경 혹은 SF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형 고글을 연상케 한다. 화면에서 금방이라도 각종 정보가 재생될 것만 같다.

이런 모습을 단순히 ‘독특하다’고 짚고 넘어가기엔 뭔가 아쉽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각종 매체에서 언급하는 용어가 브루탈리즘(brutalism)이다. 건축에서 브루탈리즘이란 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부터 20여 년간 크게 유행했던 건축 양식으로, 빠른 시공과 높은 기능성을 목표로 했다. 그 과정에서 날것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견고해 보이는 외부 표현이 특징인데, 과거 집단적 통제를 중시하던 공산권에서도 많이 만들어졌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전쟁 후 복구라는 맥락은 거의 사라지고, 사실상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만들어내는 육중하고 기하학적인 모습만을 뜻하기도 한다. 이 양식으로 분류된 건축물은 전체 크기에 무관하게 상당한 위압감을 내뿜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까운 예로 콘크리트를 피라미드형으로 쌓아 올린 서울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1981)이 해당 양식으로 분류된다.
젠틀몬스터 신사옥 역시 외형적으로 브루탈리즘 건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젠틀몬스터는 그동안 제품 컬렉션과 팝업 스토어 등 여러 방면에서 세간의 상상을 벗어나는 전략을 전개해 왔다. 그런 젠틀몬스터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신사옥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설계는 최근 성수동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는 ‘더_시스템 랩’이 맡았다. 전형적인 상업 건축의 틀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느껴지는 형태 자체와 긴장감에 집중한 결과, 반항적으로까지 보이는 형태가 완성됐다.
이런 시도는 크게 두 가지 리스크를 지닌다. 우선 모종의 사유로 소유주가 바뀔 경우 건물 활용의 폭이 좁다는 것. 또 하나는 삭막함이다. 브루탈리즘 건축물은 압도적이다. ‘압도’라는 단어에는 인간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즉,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가면 호감보다는 불안함만 남긴 차갑고 삭막한 건축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브루탈리즘을 추구할 때 반복적인 육중함에서 오는 이질감을 적절히 중화하지 못하면, 주변에서 기피하는 괴상하기만 한 결과물이 나올 위험이 높다.
젠틀몬스터 신사옥은 어딘가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이질적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한 조형 언어의 반복 대신 전혀 다른 조형을 결합함으로써 주의를 적절히 분산시키고 있다. 곡선이 주를 이루는 저층부를 지나, 중층부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돌출된 격자형 골조, X자형 브레이스 그리고 이들을 바탕으로 펼쳐진 커튼월은 이질적인 것의 결합에 능한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완공을 앞두고 모습을 드러낸 신사옥의 형태는 예상도와 거의 일치한다. 위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건축주가 추구하는 ‘다름’을 관철시킨 실험적 건축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슷비슷한 상업 건축물 속에서 브루탈리즘의 재해석으로 불리는 신사옥이 성수동의 환경과 어울려 어떤 풍경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 주목된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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