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두 울산예총 고문(시인, 소설가)의 1980년 삼청교육대 수난기(受難記)를 연재한다. 울산MBC 기자였던 최종두 고문은 1980년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군부대에 끌려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연재 글에는 인권을 짓밟는 ‘삼청교육’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고, 1970~80년대 울산의 정치, 경제, 언론, 문화계 비사(祕史)도 엿볼 수 있다. 최 고문은 “1980년대는 찬탈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영혼을 뭉개버리는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전주 같은 목봉을 힘겹게 들게 하면서 서막을 열었다”며 “몽둥이와 총으로 지레 겁을 주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 제5공화국의 주구들”이라고 술회했다. <편집자 주>
기상나팔이 울렸다. 우리는 어제처럼 연병장에 모여 인원 확인을 한 다음 고향 예배를 하고 그다음에 연병장을 도는 구보를 했다. 그때까지 배00은 우리의 대열로 돌아오지 않았다. 수면 부족 탓이었는지 구보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에게도 가혹한 형벌이 되어 나타나고 말았다.
부대의 영내를 벗어난 곳인 철조망가에 개울이 있었다. 그곳에 수련생들이 흩어져 라면으로 점심을 때울 참이었다. 배식 통을 들고 가는 나의 걸음이 약간 비틀거렸다. 개울에는 물이 거의 말라 있었지만 개울 위쪽에는 제법 큰 웅덩이가 있고 거기에는 정강이가 잠길 정도의 물이 괴어 있었다.
배식 통을 옮기려 할 때였다. “이 새끼! 왜 어영부영하는 거야!” 태권도의 2단 옆차기로 나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들어오는 군홧발이 있었다. 깜짝할 사이 난데없이 차여버린 내가 나자빠지며 그만 돌밭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그는 계급으로 보아 어느 소대의 선임 하사인 것 같았다.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내가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있자 그는 곤봉으로 내려치며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수한 구타를 당한 나는 금방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뻗어 누워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연신 곤봉으로 두들겨 패고 있을 뿐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또 다른 기간 사병이 고함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임마! 그만해! 귀휴 대상자야, 임마!” 정말 그만하란 말을 했다. 걸음걸이가 흔들거린다고 해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 경우는 드물 터였다. 그다음 그는 또 누군가와 같이 나를 물이 괴여 있는 곳으로 들고 가 던져 버렸다.
나는 그만 혼절 상태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얼마 동안을 물속에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몸이 무거운 돌에 깔려 있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어머니가 면회를 오다니… “얘야! 니가 왜 여기에 누웠노? 빨리 일어나 나가거라! 어서!” 어머니는 그 말 한마디를 하시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그만 급히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불렀지만 어머니는 들은 척 만 척하시다가 홱 돌아서시며 그 자리에 앉고는 자갈밭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니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죽는다 말이다…, 어서 일어나거라, 어서!”
나는 머리를 잡으려 손을 더듬었다. 그러나 빡빡 깎아버린 머리에 머리카락이 잡힐 리 없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서려 해보았다. 그런데 두 다리는 물에 뜨면서 자꾸만 물살을 따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편안하게 누워 있는 곳이 물속이란 걸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누가 머리를 들어 올리며 웅덩이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아, 내가 곤봉에 무수히 얻어맞고 군홧발에 차이던 생각과 함께 웅덩이로 내던져진 생각이 떠올랐다. 머리를 끌어올린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순간에 더욱 정신이 뚜렷해졌다.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는 아까 나에게 구타를 가하던 중사였다. 양 볼이 유달리 턱 쪽으로 내려쳐진 사각형 얼굴이 꽤 인상파형 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입으로 웬만큼 물을 뱉어버린 나는 소대원들에게 업혀 내무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저승 가까이로 잠시 다녀온 것이다.
몽롱하던 정신이 점점 맑아지면서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켜고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내무반이었다. 나는 꿈결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어머니의 뇌 속에는 자식을 살려주는 또 다른 뇌 하나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돌아가신 둘째 형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6.25 동란 때였다. 단 1주일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낙동강 전투에 바로 투입되고는 두만강까지 계속 북진하고 압록강 물을 철모에 담아 뒤집어쓰면서 감격의 함성을 지르고 온 형이었다.
영천의 어느 과수원에 진지를 구축하고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적의 포탄이 떨어져 큰 웅덩이가 생긴 곳에 엎드려 있다가 그만 잠에 빠져 버렸다. 그런데 잠결에 어머니가 나타나신 것이다. “얘야! 여기는 안 된다. 여기는 안 된다. 어서 피하거라!” 그런 다음 사라져가려는 어머니를 부르면서 허겁지겁 옆에 있는 웅덩이로 옮겨갔을 때였다. 또다시 포탄이 날아와 잠자고 있었던 웅덩이를 파헤치면서 더 큰 웅덩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것을 오늘 내가 경험한 것이다. 어머니가 못난 자식을 얼마나 애타게 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아니 아무도 모르게 따라다니면서 보호해 주시는 것일까? 또 어머니는 아들 생각을 얼마나 사무치게 간절히 하고 계실까? 불현듯 어머니와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그저께 밤에는 어머니가 막내 손녀를 업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꿈을 꾸었다. 노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와 수심이 가득한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 중사는 나를 집어서 왜, 그렇듯 몰매를 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여기서 이런 공포와 전율 속에 있어야 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하고 슬퍼지기만 했다. 과연 여기에서 나는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심사위원장 신 중령이 유치장을 찾아와 죽을힘을 다해서 꼭 이겨내도록 하라던 두 달 내지 석 달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없었다. 나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이 쌓이고 있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나의 심약한 모습을 기간 사병들이 본다면 나는 배00처럼 맞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들은 생생한 말 한마디를 기억에서 살려내고 곱씹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중사에게 몰매를 맞고 있을 때 누군가 고함치던 그 소리, “야! 임마! 귀휴 대상자야, 그만 해!”하던 그 소리가 자꾸만 귓전으로 맴도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지른 사람은 우리 소대 선임 하사일 것 같았다.
귀휴!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안다. 군 복무 당시 가장 많이 듣던 병무용어(兵務用語) 중에 하나다. 충청북도 증평군에 있는 예비 사단의 병사구 사령부에서 근무했었다. 병무청이 개청되어 거기서도 근무하며 익힌 병무행정의 용어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예정된 훈련을 다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 귀휴병의 대상자란 것이 된다.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 옆자리의 김00이 가장 먼저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방금 훈련이 모두 끝나고 소대장이 궁금해 뛰어왔다고 했다. 그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나직히 말했다. “소대장, 좀 어떻노?” 나는 쓴웃음을 지었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수련생들끼리는 누구나 말을 놓으며 대화를 건넨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무리 말을 해보아도 아무 소용없는 말뿐이었다. 추측만 가지고 주고받는 소리는 또 다른 추측만 낳을 뿐… 우린 모두 그런 처지로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혼절 상태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의 생각을 떠올리다가 배00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나는 것이었다. 배00! 지금도 그가 왜 끌려왔는지를 알 수 없다. 배00! 이제 그는 이 생지옥의 잊을 수 없는 곳에서 만난 무섭도록 그리운 친구가 되었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그의 비명소리, 또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꺼져가던 마지막 모습. 살아가면서 가끔은 그 모습이 정말 무섭도록 보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에겐 전율하듯 깊고 질긴 공감과 함께 서로에게 떼놓을 수 없는 형제애 같은 것이 생겼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그러나 어느 곳에서 만나 그 형제애를 밤을 새우며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순하디순한 눈동자가 닫힐 때 그 순간 나도 그와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텅 빈 내무반에서 혼자 있으려니 배00과 어머니, 그리고 나를 가슴 부풀게 하는 귀휴! 그 희망의 소리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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